트래비스는 향락적인 밤거리의 뉴욕을 거닐며, 언젠간 저런 쓰레기를 씻어버릴 날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의 현실은 여자에게 치근덕대거나 포르노 극장에서 시간을 죽이는 시궁창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트래비스가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악의가 없어 보였지만, 영화는 그에게 동정과 연민의 시선을 보내지도 않았다. 그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사회 부적응자였고 망상장애를 겪었으며, 정의를 구현할 힘이 필요하다는 이상한 신념에 사로잡혔다. 결국 트래비스는 불쌍한 소녀 아이리스를 자신이 구원해야 한다는 이상한 집착과 책임감에 빠졌다.
뒤틀린 영웅심리에 기인한 그의 행동은 아이리스를 진정으로 살리려 한 것이 아니었고, 역설적이게도 개인적 광기의 배설과도 같은 이 사건을 통해 트래비스는 사회의 영웅이 되며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영화가 후반로 갈수록, 특히 암살 시도 실패부터의 일련의 과정은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이자 비논리적으로 전개되었기에 이것이 트래비스 혼자만의 '망상'이었을지 모른다. 물론 여기서 분명한 것만은, 트래비스는 개인적인 분노를 배설했을 뿐이라는 것.
시궁창 같은 이야기에 시궁창 같은 인간을 다루면서도, 구더기 소굴 같은 현실을 비추는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아름다웠다. 버나드 허먼의 재즈와 뉴욕 밤거리 네온사인의 조합은 치명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영화의 부제를 'Midnight in New York'이라 해도 전혀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가까운 과거의 고고학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듯, 1975년의 뉴욕 풍경은 필름 안에 이렇게 영원히 남았다.
5년 전에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다소 지루한 영화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번에 다시 보니 지루하기는커녕 숨 막힐 지경의 비주얼, 사운드, 편집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젊은 날 스콜세지의 에너지는 대단했다. 물론 어떤 장면들, 특히 한 가지 뽑는다면 살인의 공간을 비추며 뒷걸음질하는 오버헤드 숏은 다소 지나치게 힘을 준 연출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젊고 혈기 왕성하던 그 시절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이러한 연출 역시 그 나름의 매력을 지녔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와중 이 영화가 끝나지 않고 영원히 상영되었으면 좋겠다고 느낀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는데, <택시 드라이버>를 보며 아주 오랜만에 그러한 감정을 느꼈다.
2025.4.24. 수원역 메가박스 2번째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