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무리에서 가장 약한 존재로 불리며 아버지에게마저 버림받은 소년의 여정으로 시작한다.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는 욕망과, 자신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희생한 형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감정이 동시에 그를 밀어붙인다. 처음부터 부과된 이 과업과 주인공의 여정은 마치 신화 속의 사명을 연상시키며, 이야기 역시 반전 없이 평이하게 흘러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중반부에 이르러 칼리스크의 사냥이 사실은 진짜 하이라이트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메인 빌런이 웨이랜드 유타니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예상과는 달리 서사 자체가 흥미롭게 확장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매혹되는 건 공간 그 자체다. <아바타>의 안티테제처럼 느껴지는 공간 디자인. 지구에선 볼 수 없는 낯선 생물들이 저마다 생명력을 뿜어내면서도, 동시에 이곳 전체가 ‘죽은 공간’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전운 같은 기운이 깔려 있다. 자연의 향기가 감돌지만 결코 편안하지 않은 풍경. 땅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이자 이야기의 핵심 축처럼 느껴지는데, 본작의 부제가 ‘BADLANDS’로 붙은 이유가 이 지점에서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엘 패닝의 존재감은 이 영화에서도 단번에 확인된다. 그녀는 이미 스타라기보단 예술가에 가깝다는 인상이 강하다. 커리어를 보면 오히려 블록버스터보다 아트하우스 작품에서 더 익숙한 얼굴이다. 그렇다고 해서 블록버스터에 어울리지 않는 배우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이 장르의 제약된 틀 안에서 본인의 태생적인 탤런트로 승부해야 하는 순간들에서, 그녀는 분명 반짝임을 보여준다. 블록버스터란 장르가 대부분의 시간을 ‘세밀함’보다 ‘커다람’으로 밀어붙여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엘 패닝의 진면모를 보고 싶다면 다른 작품들을 찾아가는 편이 맞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본작에서 맡은 역할을 흔들림 없이 수행해냈다.
다만 최종 보스가 ‘로봇 탄 테사’로 보였던 순간은 살짝 김이 샜다. 위협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칼리스크와 비슷한 ‘덩어리’의 로봇이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결말은 칼리스크와 그 로봇이 붙는 그림이 되겠구나 싶은 확신이 생겼고, 실제로 그렇게 흘러가자 이 블록버스터의 스케일이 크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도 아쉬움이 남았다.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가 싶던 찰나, 영화는 마지막에 또 하나의 갈등을 꺼내놓는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본질적 싸움이 남아 있다는 듯, 덱은 고향으로 돌아가 아버지를 다시 마주한다. ‘항복하고 네 자리를 받아들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거부하며, 그는 자신의 부족이 따로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아버지이자 숙적과의 결투 끝에 그를 쓰러뜨리고, 다시 새로운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이 진 엔딩의 존재는 앞선 전투의 아쉬움을 충분히 만회하고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