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모든 장면에 깔려 있는 과감함이 우선 마음에 든다. 등장인물들의 개인사를 일일이 설명하는 것에 집착하기보단 보다 중요한 서사를 굴리는 데 집중했다. 비슷한 예시로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선 영화 자체의 러닝타임이 길기도 하지만 모든 인물들의 캐릭터를 만들려는 시도로 인해 필연적인 늘어짐이 발생했었기에 이 영화가 보여준 '선택과 집중'은 제법 인상적이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에서나 볼 법한 호쾌한 신체훼손을 이런 히어로 장르에서 볼 줄은 몰랐다. 탱탱볼로 새를 끔살시키는 오프닝에서부터 이 영화는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개인적으로 놀라운 것은, 2억 달러에 육박하는 초대형 블록버스터임에도 이렇듯 매니아틱한 서사와 이미지들을 들고 나올 줄은 전혀 몰랐다. 한편으론 흥행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오지랖 같고, 한 명의 영화팬으로서 그저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 고맙다.
히어로 장르가 가지고 있던 케케묵은 클리셰들을 모조리 비틀겠다는 의지를 가진 듯 예측 불가능한 전개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히어로 장르답지 않게 프롤로그부터 템포를 한껏 끌어올리는 것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낼까 하는 마음으로 삐딱하게 봤었는데 전혀 예상치도 못한 방향으로 전개가 되는 것을 보며 이후부턴 그냥 즐기면서 봤던 것 같다. 시점의 변주를 통해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방식도 흥미로웠다.
제임스 건은 마이너리티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있다는 생각이 확실히 든다. 더욱이 그의 영화에선 이야기 전반적으로 낙관적인 비전이 강하게 깔려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따분한 감정적 호소를 범하지 않고도 결말에 이르러 분명한 주제를 관철시키는 제임스 건의 능력은 <가 오 갤> 시리즈에서 그랬듯 훌륭하게 느껴진다.
역시 다소 설명적인 부분들이 들어 있다는 점에선 아쉽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 이미지들의 비대함이 더해져 피로감이 더해진다는 것 또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초반부터 캐릭터들의 재롱을 보여주기 바빠 빌런의 아우라를 보여주는 순간들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히어로라는 케케묵은 왕도를 지닌 장르에서 이러한 광기를 전달하는 영화는 제법 신선하기에 전반적인 평가는 훌륭한 영화라는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