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딕 양식의 대저택에 사는 주인들은 크리스마스에 어떤 생명체를 강물에 버린다. 한참을 떠내려 가 하수도에 있는 펭귄들이 발견한 그 아이의 이름은 오스왈드 코블폿. 33년이 지난 뒤 그의 이름은 펭귄맨이 된다. 1편의 빌런인 조커가 사뭇 우아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잘 빠진' 빌런이었다면 본작의 빌런인 펭귄맨은 멋 없고, 지저분하고, 세상의 밑바닥이 투영된 B급 냄새 가득한 캐릭터다. 본작의 완성도 또한, 숏들은 더 기괴해졌고 액션은 더 아찔해졌다. 더 팀 버튼스러워진 2편이다.
또한 세 명의 구도가 흥미롭다. 펭귄맨에겐 펭귄이, 캣우먼에겐 고양이가, 배트맨에겐 박쥐가 있다. 세 인물은 또 각자 두 개의 이름으로 불린다. 펭귄맨 혹은 오스왈드 코블폿, 캣우먼 혹은 셀리나 카일, 배트맨 혹은 브루스 웨인으로. 의도가 다분한 세 인물들의 이러한 구도와 이로 인한 대립이 인상적이다. 이념의 대립이자 인격의 갈등.
펭귄맨은 예수의 생일에 태어나 모세와 같이 바구니에 떠내려가 펭귄에게 발견돼 우연히 자란 뒤 장성하고 세상으로 올라와 인기를 얻고 추종자들을 거느리지만 끝내 예수와 같은 나이인 33세에 사망한다. 자의와 타의가 결합해 결국 타락했지만 태생부터 받았던 상처로 인한 분노는 그 누구에게도 치유받지 못했음을, 그저 인간다운 것들을 누리고 싶었던 그의 첫 희망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펭귄맨이 세상 밖 아웃사이더들을 대표한다면, 세상 안에서 사회의 편견과 인습에 고통받는 인물을 대표하는 캐릭터는 분명 셀리나 캣우먼이다. 때문에 셀리나의 각성은 직장인들의 일탈, 고착된 성 관념의 전복을 상징하는 것 같다. 바쁘게 누군가에게 서비스를 하던 'HELLO THERE'에서 모두에게 전방위적 폭격을 가하는 'HELL HERE'로. "왜 당하고 살아?" 라며 혈혈단신 마이웨이로 고담 시를 누비는 그녀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공식적 빌런은 펭귄맨이지만,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펭귄맨은 악당이라기보단 한 사회의 '현상' 같고 진정한 악당은 슈렉 사의 수장 맥스 슈렉이라는 생각이 든다. 뒤에서 세상 모든 문제의 원인을 제공하고 앞에선 정치적 권모술수에 능한 그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때문에 맥스 슈렉의 죽음에선 우리 모두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테지만, 쓸쓸히 강물에 떠내려가는 펭귄맨을 또다시 펭귄들이 지켜주는 마지막은 어떤 빌런의 죽음보다 슬프고 감정적이었다.
<다크 나이트>를 먼저 접한 나로서는 슈퍼히어로 영화의 정점은 <다크 나이트>이라 확신했었고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허나 팀 버튼의 <배트맨 리턴즈>라면, 슈퍼히어로 영화의 그 정점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이제 들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뛰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마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