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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는 자신이 데리고 있던 여성들이 잇달아 사라지자 행방을 쫓는다. 새로 나간 미진을 부른 손님의 번호가 앞선 실종자들의 마지막 통화 번호와 같다는 것을 알아낸다.
에디터가 이 영화에 대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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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투박한 열정으로 그린 스케치
<추격자>는 추격을 가장 먼저 끝내버리는 추격 영화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를 나란히 세워 출발하지만, 쫓는 자의 목표는 영화가 시작하고 30분 남짓 만에 달성된다. 이상한 것은 그다음이다. 붙잡힌 영민에게는 도주의 시도가 없다. 곧 달아날 것 같은 낌새를 흘려 서스펜스를 빚는 최소한의 장치조차 없다. 그는 잔혹한 사이코패스 살인자이면서 동시에 철저하게 무력한 존재로, 남은 시간의 대부분을 경찰서 의자에 앉은 채 보낸다. 표적이 이토록 일찍, 이토록 순순히 잡히는 자리에서 이 영화의 진짜 구조가 시작된다.
각본의 면에서 본작이 성공한 지점은 각본이 없다는 데 있다. 인물의 전사나 프로필처럼 텍스트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은 최소화되어 있다. 영민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플래시백은 한 컷도 없고, 한때 형사였다는 중호가 어쩌다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건지도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카메라는 설명을 맡지 않고 지금 벌어지는 현상만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태도는 두 인물의 성질과 절묘하게 맞물린다. 영민도 중호도 사유하는 인간이 아니라 행동하는 인간이며, 설명하지 않는 연출은 설명할 내면을 갖지 않은 자들에게 정확히 값하는 형식이다.
그렇다면 <추격자>의 추격자는 무엇을 쫓는 자인가. 중호는 쫓는 자이면서 모르는 자다. 영민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영화의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늦게 아는 사람이 그다. 눈앞의 저 허술한 사내가 살인범일 것이라고는 조금도 믿지 않은 채, 그는 자신의 본래 목적이었던 채무자 추적을 위해 이미 붙잡아둔 자의 행적을 거꾸로 밟는다. 도중에 회심하여 그 추적이 미진을 구하겠다는 선의로 바뀌기는 하지만, 회심 이후에도 그는 다른 생각에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중호는 끝내 영웅의 자리에 놓이지 못한다. 형체가 있는 것(영민)은 이미 잡았음에도, 형체가 없는 것들(행적)을 쫓으려 하다 파국에 이르는 인물. 눈을 뜨고 있으나 보지 못하는 자다.
영화가 겨누는 표적은 언뜻 무능하고 오합지졸인 '경찰'처럼 보이기도, 권위가 무엇보다 중요한 '검사'처럼 보이고, 시장에게 날아든 똥 한 덩이에 온통 매달리는 '언론'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들 모두 맞다. 그러나 중호 역시 그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회심했을지언정 근본적으로 눈이 먼 자의 말로가 얼마나 비극적인가. 그래서 미진의 죽음은 사건이라기보다 그에게 내려진 처벌처럼, 죄책감의 형태로 남는다. 그리고 <추격자>는 그 죄책감을 중호에게만 지우지 않는다. 우리는 중호의 여정을 따라간다. 정확히 말하면 제 물건과 제 돈을 떼어먹은 놈을 찾아 나선 자의 뒤를 따라간다. 그 걸음에 동참하는 순간 미진은 되찾아야 할 물건의 자리에 놓이고, 관객 또한 미처 자각하지 못한 채 미진을 그렇게 바라보게 된다.
다만 여기서 그 윤리의 진정성을 점검하긴 해야 할 것이다. 미진의 존재로 관객을 시험대에 세우는 <추격자>는 정작 미진의 생사를 걸고 서스펜스를 만든다. 관객을 심문하는 자가 같은 방법으로 관객을 붙들어두고 있다면, 본작 자체는 그 윤리적 문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물음이 <추격자>의 가치를 깎아내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스스로 던진 질문 앞에 완전히 결백하지도 않다고는 생각한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장르에서 출발해 장르에서 끝났다는 것이 아쉽다. 영화적으로 가장 잘 만들어진 대목이 초반의 추격 장면, 그러니까 가장 장르적인 부분이라는 사실이 그 증거처럼 보인다. 다 보고 난 뒤에도 가장 선명하게 남는 것은 여전히 골목과 계단으로 이어지던 그 밤의 몇 분이다.
에너지에는 뜨거운 감성으로 만드는 것이 있고 차가운 이성으로 만드는 것이 있다. 두 정서가 고루 갖춰질 때에야 양과 질 모두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온다고 믿는데, <추격자>는 오직 전자의 방법으로만 에너지를 만든 영화처럼 보인다. 뛰고 때리고 소리 지르는 체온의 에너지는 넘치지만, 그 체온을 식혀 구조를 계산하는 쪽의 힘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강렬하되, 어딘가 양적으로 모자란 인상이 남는다. <추격자>는 훌륭한 작품이다. 그러나 나에겐 '역사적인 걸작' 정도가 될 수 있었던 재료와 포텐을 가지고 그만큼은 채 도달하지 못한 아쉬운 작품의 모습이 엿보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