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이 카메라에 등장할 때는 마치 권력이 그녀에게 주어져 있는 것만 같다. 카리스마 가득한 눈빛으로 출소하는 전도연의 모습을 보면 이후부터는 그녀의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의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리볼버>는 하드보일드의 외피를 쓴 채 전혀 다른 이야기를 보여준다. 분명, <리볼버>의 이야기는 흥미로운 이야기다. 그러나 본작의 실패는 그 이야기를 전달하고 꾸미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에서 비롯된 것 같다.
고군분투하는 전도연의 모습은 그리 스피디하지 않은 초반부의 서사를 그나마 흥미있게 해 주는 몇 안되는 요소다. 날아오르려는 전도연에게 이야기는 날개를 달아주려 하는데 편집이 그 날개를 재차 꺾는다. 더 고조시켰어도 되지 않았을까 하는 씬들에서 애석하게도 에피소드는 넘어가고 어떤 순간에선 지나치게 힘을 주듯 화려한 편집으로 인해 영화의 모든 요소보다 '편집' 그 자체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정마담을 보자. 배우 임지연의 이미지가 이대로 굳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현 충무로에서 강렬한 캐릭터를 그녀만큼 변수 없이 안정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도 드물 테다. 그렇지만 택시에서 말투를 바꿔가며 여러 사람에게 전화하는 정마담의 씬은 캐릭터를 손쉽게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촌스럽기 짝이 없다. 하드보일드는 말이 많으면 어려워진다. 하드보일드는 질척이면 끝나는 거다.
이상하리만치 정이 넘치는 본작의 캐릭터들은 큰 문제다. 앤디가 더 거물일 줄 알았다. 그레이스와 본부장이 보다 더 적극적인 흑막일 줄 알았다. 정마담이 더 독할 줄 알았다. 대체 무엇에 얽매여 있길래 잔뜩 기대감만 조성한 채 사그라지는 것일까.
위악적으로 어필하는 한국영화의 어떤 순간들은 이제 이골이 난다. 앤디의 수하 셋이 나오는 장면 통으로, 영화의 격을 깎아먹는 시간이었다. 욕설로만 일관하는 저렴한 대사들만의 나열은 헛웃음만 나올 지경이었다. 본작에서 그저 단순무식한 욕설이 대체 몇 번이 나온 것인가? <무뢰한>은 기품이 있었다. 기품이 있었던 <무뢰한>의 오승욱은 어디로 갔는가? 미처 긴장감을 다 조성하기도 전에 터트리는 액션. 유독 눈에 띄게 훌륭한 파트인 '촬영'이 아깝기만 할 따름이었다.
그렇지만서도 영화의 엔딩은 만족스러웠다. 어떤 영화의 경우 엔딩 자체의 임팩트를 주기 위해 결말에 이르러 영화의 내용과 동떨어진 순간들을 만들어내곤 하는데, 이 영화는 본작의 이야기가 유혈의 복수극이 아님을, 살생이 가득한 오락이 아님을 끝까지 잊지 않는다. 그저 약속한 바를 받아내 목표를 이루고 맞이하는 소소한 침묵 속의 여유가 이 영화의 엔딩인 것은 아주 인상적인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