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모그래피에서 스스로의 스타일이 분명하게 변화해 가는 감독들이 존재한다. 데이빗 핀처는 그 중 한 명일 것이다. <더 킬러>의 스타일은 명백히 핀처의 초기작을 떠올리게 한다. 다짜고짜 들어오는 타이틀 롤에선 <세븐>의 그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시니컬함과 나르시시즘 그 어딘가에서 부유하는 독백들은 <파이트 클럽> 같다.
<더 킬러>가 흥미로운 부분은 우리가 수없이 봐 왔던 '킬러'의 프로필을 비틀었다는 것에 있다. 문명과 동떨어져 있던 이제까지의 킬러와는 다르게 <더 킬러>의 주인공은 스마트폰을 능숙하게 사용하고, 에어비앤비와 아마존을 활용하기도 한다. 구조적으로도 흥미로운데, 전문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대개의 경우 초반 몇 차례의 성공을 보여주다 중반 혹은 중후반에 크나큰 실패를 보여주고 이를 최후반부에 만회(혹은 만회하려는 시도)하는 구조를 가진다. 허나 이 영화는 영화의 첫 사건부터 대차게 '실패'를 보여주고 이로 인한 겪는 난관들을 해결하는 (혹은 성공하는) 정반대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무엇보다 <더 킬러>의 매력은 '매력이 없다는 것'에 있다. 다시 말해 <더 킬러>는 킬러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암살의 매혹, 장르의 매혹이 없다. 차라리 이 영화는 21세기를 사는 한 직장인의 직업드라마 같다. 동료와의 통화 장면은 직장 스트레스에 신음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고, 도미니카로 휴양을 떠난 주인공이 그곳에서도 사건에 휘말리는 모습은 마치 주말에도 일에 바운더리에 있는 현대 직장인의 그것을 보는 듯 하다. 그러한 관점에서 <더 킬러>의 살인은 직장인의 프레젠테이션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물론 거인과의 액션씬은 인상적이었다. 정말 누가 이길지 몰랐던 혈투. 자주 느끼는 점이지만 놀란보단 핀처가 액션씬은 잘 찍는다. 액션 합의 차이라기보단 카메라를 보다 잘 돌린 이유에서인듯 하다.
언뜻, <더 킬러>는 자본주의 속 피라미드의 아래층이 위층에게 혁명을 시도하는 이야기의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유층은 한 번 기침할 뿐이지만 하류층은 그것이 파도로 다가온다. 그러나 주인공은 결국 자신은 거대한 공장의 부품일 뿐이라는 현실에 수긍하고 돌아가 현재의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는다. 물론, 그럼에도 그러한 상명하복의 피라미드에서도 전복의 여지가 생길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기는 한다.
<드라이브>가 떠오르기도 하고, <이창>이 생각나기도 하고, 멜빌의 영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 머릿속을 채운 단 하나의 인상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핀처의 초기 모습이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