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분명 새로운 시도였을 것이다. 장난감이 주인공인 영화를 이미 만든 픽사였지만, 온전히 인간의 사회와 동떨어진 곤충들의 세상을 다루는 일은 담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한편 설레는 시작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오프닝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스크린에서 익숙하게 봐 왔던) 인간의 시선에서 점차 (우리가 스크린에서 지금껏 봐 오지 못했던) 곤충의 시선으로 바뀐다. 이 순간은 일종의 선언적인 광경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플릭은 영화의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초반 그의 모습은 명백한 '비호감'의 전형을 달린다. 동족들이 피와 땀으로 모은 식량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 버린다거나, 새로운 기구를 만들었다며 여럿을 귀찮게 만든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은 그가 지은 이 업보를 청산하는 과정이 될 것임을 초반의 그 '비호감 만들기' 과정에서 짐작할 수 있다.
핵심은 플릭의 비상이 그가 의도한 것이 아님에서 비롯된다. 플릭은 영화의 후반부 또 한번 위기를 맞지만, 서커스 단원들은 그로 인해 희망과 용기를 얻은 것이다.
서커스 시퀀스는 아예 독립적인 이야기처럼 보인다. 애니메이션 장르치곤 제법 실험적인 플롯. 그리곤 영화의 마지막조차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닌, 몇 걸음을 더 들어간다. 개미와 메뚜기 두 세계의 군주와도 같았던 메뚜기의 우두머리 하퍼조차 '새'라는 존재 앞에선 새끼의 고작 한 입 식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권력과 전쟁의 무상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지점에 다다른다.
다만 등장인물들이 변화하는 순간들에 대한 서술이 납득할 만한 수준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