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위협과 시작되려는 행복의 경합. 스토리타임과 러닝타임이 일치한 것에서 비롯되는 촉박의 서스펜스. 영화는 이 두 가지 스킬을 갖고 내내 긴장감을 유지해간다.
위기에 닥쳤을 때 마을의 주민들은 머뭇거리기만 하며, 어느 하나 앞서 나서는 이 없이 눈치만 보기 급급하다.교회의 사람들은 오히려 케인을 향해 이곳을 떠나라 말한다. 케인에게 이곳은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한다. 집단에게 닥친 진정한 위기는 외부에서 다가오는 적의 존재가 아니다. 진정한 위기는 내부에서 생겨나는 분열과 두려움이다. 집단은 끝내 침묵하고,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케인을 카메라는 잔인한 줌 아웃을 통해 보여준다.
돌아온 에이미의 도움과 함께 결국 프랭크 일당을 제압하지만, 이 영화의 엔딩은 해피엔딩이 아니다. 모두를 처리하자 하나 둘 기어나오는 주민들. 케인은 이 모습에 환열을 니끼고 웃음기가 사라진 채 보안관의 배지를 땅에 버리고 길을 떠난다. 소동은 종료되었지만, 거짓으로 유지한 마을의 신뢰는 깨어졌다. 이들의 참모습을 본 전직 보안관은 더는 이곳에 남을 명분이 없었을 테다.
훌륭한 스릴러 오락이면서도 서늘한 사회 드라마로서의 역량이 뛰어난 영화. <리오 브라보>가 이 영화에 대한 안티테제로 만들어졌다지만, 나는 두 영화 모두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