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모두가 알고 있는 시대를 "오래전 옛날"로 소개하는 대범함이 심상치 않다. '엘리제를 위하여'가 흐르고 비장한 듯 손님 맞을 준비를 하는 남성 라파디트. 사실 이 영화의 첫 시퀀스엔 별다른 사술이 들어있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다 알고 온' 한스 란다가 공간의 주도권을 쥐고 상대방을 그저 절멸시키는, 지독하고 극악무도하고 전례없던 빌런을 관객에게 명백히 각인시키는 이 시퀀스는 함께 쿠엔틴 타란티노의 필모에 있어서도 손에 꼽히는 시퀀스임이 자명하다.
타란티노는 극중 '지나가듯' 등장하는 인물들마저 관객에게 각인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미 데뷔작부터 인증된 그의 캐릭터라이징 능력. 그 중에서도 본작의 '한스 란다'는 아마도 그의 역량이 총동원된 캐릭터일 것이다. 얼핏 예의 있어 보이지만 압도적인 정보량을 통해 서서히 상대방을 쥐고 흔드는 먹이사슬 정점의 인물. 허나 그 정세를 파악하는 능력을 가지고 막판엔 적에게 투항하는 추함을 보여주기까지 하는, 타란티노는 21세기 최고의 빌런을 보여주었고, 크리스토퍼 발츠 영화 역사에 남을 연기를 보여주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역사를 자신의 목표대로 재해석하겠다는 의지를 영화의 첫 순간에 제시했다면, '모두가 알고 있는' 인물은 과연 어떻게 제시되고 바뀌어갈지 자연스레 궁금해지게 된다. 다혈질이고 버벅거리는 아돌프 히틀러의 첫 등장씬은 그래서 유독 특징적으로 우스꽝스럽게 그려진다. 타란티노는 이 순간 이 인물을 맘껏 가지고 놀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의외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의상이나 공간의 디자인 등 미술적인 부분이 굉장하다. 시대극만의 'vivid'하고 조직적인 느낌도 역시 타란티노는 훌륭하게 살린다.
'선술집 시퀀스'는 일견 극의 흐름상 너무 긴 시퀀스 같긴 하지만 한편으론 이를 감독 자신의 능력 발휘를 위한 장으로 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인물들은 연극처럼 등장하고 퇴장하며, 서스펜스는 사건의 종결과 사건의 시작으로 계속해서 연장된다.
감독의 명확한 의도가 느껴지는 작전명 '시네마'. 이야기의 중심 무대가 되는 '극장', 그리고 '시사회'. 예술은 절대로 과거를 바꿀 수 없다. 그럼에도 '대체 역사'를 선언한 이 세계 안이라면, 영화의 이름으로 역사의 악을 처단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정치적, 사회적 논란을 절대적으로 피할 수 있는 적을 세워놓은 뒤, 치밀하고 치밀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그 마지막 하이웨이를 달리는 폭발을 보여주는, 그야말로 황홀한 학살.
명실상부 타란티노의 최고작.
2022.11.3 2번째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