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데트>의 공간은 종파의 고루한 교리만이 남아있을 뿐, 누구 하나 순수한 믿음을 보여주는 이는 없다. 영화에 등장하는 성직자조차 기적을 믿지 않는다. 이들은 모두 목적을 위한 믿음의 형태만을 고수하고 있다. 요하네스가 이 촛불은 꺼지지 않으리라 말한 직후 잉거가 촛불을 불어 끄는 모습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드레이어는 영리하게도 주인공인 요하네스를 비중 있게 포착하지 않는다. 영화는 보겐 가족의 에피소드를 '믿음'을 주제로 하여 이야기한다. 사실상 한 가족의 혼담 이야기를 벌이는 듯한 플롯에서, 종파로 인한 갈등을 묘사하는 드레이어는 섬세하다.
"안나와 잉거를 위해서요."라 말하는 안더스에게 "잉거와 안나를 위해서가 더 적절하지."라며 지적하는 모습에서도 알 수 있듯 보겐은 '전통적이고 구태의연한' 기독교적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맏이인 미켈과 아버지인 보겐 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동시에, 안더스와 안나의 혼사를 눈에 띄지 않게 돕는 잉거는 기독교가 추구하는 헌신적 인물의 표상처럼 보인다.
아이는 유일하게 요하네스와 소통하는 인물이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는 마태복음의 유명한 구절이 있듯 기독교적 관점에서 어린 아이가 싱징하는 의미는 분명 순수성이다.
한편 미켈 가족의 집을 방문하는 성직자의 모습은 이와 대비된다. "기적은 자연의 법칙을 깨는 것"이라는 의견을 망설임 없이 이야기하며 "합리적"인 양 스스로를 포장하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순수하게 어머니의 부활을 기도하는 아이의 모습은 설혹 비참한 아우성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합리성을 운운하는 세상의 종교인들과 비교하여 그 믿음이 보다 진실할 것이다.
기적을 보이는 영화라 하여 드레이어는 이 영화를 판타지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영화는 가벼운 특수효과를 통해 신성함을 휘발시키지 않는다. 기적은 가장 작은 순간 발현한다. 종교의 세태를 비판하는 동시에 종교가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믿음의 순수성'을 가장 영화적으로 보여주는 영화. 기적은 종교가 아니라 믿음에서 비롯된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영화. 영화가 만들어낼 수 있는 신성함의 한 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