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만이 할 수 있는, 영화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항상 생각해 보게 된다. 장고 끝에 내리는 하나의 생각은 결국 영화 내에서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이 영화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공간을 초월한 <거울>의 엔딩 시퀀스, <셜록 2세>의 전설적인 꿈 시퀀스, <화양연화>의 yumeji 시퀀스 같은 그런거 말이다.
이 영화의 초반 죽음과 체스를 두는 시퀀스는 그래서 가장 영화적이다. 죽음이라는 관념을 실체화시킨 선택도 그렇거니와 삶과 죽음, 현실과 비현실이라는 이분의 공존을 만들어낸 베리만의 이 장면은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영화적인 마법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블로크와 옌스는 고국으로 돌아와 죽음의 다른 모습들을 마주하게 된다. 죽음을 그리는 화가, 죽음을 피하는 사람, 죽음을 연기하는 사람, 죽음을 마주하는 소녀, 죽음을 두려워하여 신께 엎드리는 사람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보다 정확하겐, 죽음이 불러오는 절망의 공포 앞에 인간은 철저하게 무력해진다. 블로크는 신께 고해하지만 신은 응답하지 않는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끝까지 믿는 어떠한 이들은 때로는 미련해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의 톤은 지극히 무겁고 우울하며, 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군상들은 절망의 공포에 둘러쌓여 있지만 광대 부부와 아이의 모습은 이 영화의 유일한 희망적 상징이다. 생명을 감사하고 소박한 산딸기와 우유에 행복을 찾는 이들은 베리만이 바라는 현재에 충실한 사랑을 대표하는 모습일 것이다.
인간은 죽음을 이길 수 없다. 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세상 속에서 무한히 절망할 수 있지만 반대로 이 살아있는 세상 속에선 우리의 앞에 놓인 것에 충실하고 하루를 감사할 수 있게 된다면 이것이 아마도 인간이 행할 있는 가장 현명한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불러온다.
영화의 마지막인 죽음의 무도 장면은 그래서 더없이 절망적이지만 동시에 최선의 희망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