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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에카달 가족의 집에서 크리스마스 파티가 열리고 있다. 화니와 알렉산더는 이 집의 첫째 아들인 오스카 에카달의 자녀로 할머니 헬레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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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마르 베리만이 예술에 대해 가지는 태도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모든 게 가능하고 개연성이 있다.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얄팍한 현실의 틀 위에 상상은 새로운 무늬의 천을 짠다."
영화의 마지막, 화니와 알렉산더의 할머니인 헬레나가 <꿈>이라는 희곡의 한 구절을 읊을 때의 대사이다. 크게 집-고난-귀환의 3개의 챕터로 구성된 이 영화는 잉마르 베리만의 공식적인 은퇴작이며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과 자신이 바라는 이상이 녹아있는 자전적인 작품이자 일평생 헌신해 온 영화와 연극이라는 예술에 대한 철학과 은유가 담긴 작품이다.
영화는 알렉산더가 연극을 주관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여담으로 이 알렉산더 역을 맡은 배우는 너무 귀여웠다. 세트의 현판엔 "단지 재미만을 추구하지 말라" 라는 구절이 의미심장하게 쓰여 있다. 챕터 1은 환상적인 공간이며 거짓 혹은 낭만과 예술이 허용되는 세계를 다루고 있다. 대가족이 모인 알렉산더의 저택의 분위기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며 웃음과 행복이 떠나지 않을 공간이다. 알렉산더의 가족들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여 화니와 알렉산더의 아버지인 오스카가 관리하는 극장에서 연극을 행한다.
한 가족이 벌이는 연극답지 않게 수많은 관객들이 이들의 연극을 감상한다. 다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이 장면은 다분히 은유적이다. 연극의 관객은 세상 사람들에 대한 은유로 나에게 다가온다. 베리만의 또다른 걸작인 <페르소나>의 테마와 유사하게, 인간은 세상과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페르소나를 만들어 살아간다. 수많은 가면을 쓰며 살아가고 끊임없이 새로운 역할을 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그러므로 극장 벽에 둘러쌓인 '작은 세계'는 인간 세상의 은유처럼 보인다.
이야기를 한참 건넌 영화 중반, 헬레나가 (이 무렵 이미 사망한) 자신의 아들 오스카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오스카가 앞서 언급했던 의미와 상통하기에 헬레나가 말한 대사 중 일부를 아래와 같이 인용한다.
"난 엄마 역할이 좋았어, 여배우 역할도 좋았지만 엄마 역할이 더 좋았지. 임신한 게 좋아서 그땐 극장은 쳐다보지도 않았어. 어쨌든 모든 게 연극이야, 좋은 역할도 있고 안 좋은 역할도 있지.
난 엄마 역할을 했어, 줄리엣과 마가레타 역할도 했지. 근데 갑자기 과부와 할머니 역할을 맡게 됐어.
계속 다른 역할을 하는 거야. 그걸 피하면 안 돼.
....(중략)........네가 죽었을 때 말할 수 없이 슬펐단다, 내겐 낯선 역할이었어. "
남매의 아버지 오스카는 연극이 끝난 뒤 연극을 예찬한다. "연극은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그 모습을 비추어 주기도 하며, 관객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바깥 세상을 잊게 해 주는 역할도 한다."는 말은 오스카가 생각하는 연극의 가치이자 잉마르 베리만이 생각하는 예술의 가치일 것이다.
이야기에서 잠시 떨어져 내가 이 영화에서 베리만의 연출에 감탄을 느낀 지점은 바로 남매의 아버지 오스카가 사망하는 과정에서의 일련의 시퀀스였다. 많은 영화들의 경우 인물의 죽음을 다룰 때 감정적인 음악과 감정적인 연기를 통해 관객을 흔들려 하지만 <화니와 알렉산더>는 너무나도 냉정하게 한 인간의 죽음을 미화 없이 묘사함으로 인해, 어린 주인공 알렉산더의 시선에서 느낄 죽음에 대한 미시감의 공포와 죽음이라는 하나의 사건이 주는 차갑고도 무거운 공기를 기교 없이 전달하는 데 크게 성공했다.
그 무엇보다 조용했을 오스카의 죽음 직후의 한밤중 소름끼칠 정도의 음성으로 울부짖는 아내 에밀리의 음성에 이끌리는 남매의 움직임을 유영하듯 잡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남매의 시선대로 낯설고 서늘한 광경으로 비춰지는 아버지의 시신은 남매와 관객 간의
감정적 동화를 만들기에 또한 인상적이었다.
챕터 2는 '현실'적인 공간이기에 거짓이 허용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가능한' 영화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불가능한' 주교의 집이 만들어내는 충돌은 그렇기에 필연적이다. 챕터 2는 알렉산더가 학교에서 한 '거짓말'로 인해 어머니와 주교에게 꾸중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머니가 자신을 서커스단에 팔았다는 거짓말을 학교에서 외치고 다녔다는 것이 그 까닭인데, 이후 알렉산더가 아론의 집으로 향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미래를 암시하는 형태로 기능하게 되기에 드라마적으로 역설적이다.
어머니 에밀리가 남편 오스카의 죽음 이후로 자신을 줄곧 위로해주던 주교와 재혼하게 되며 화니와 알렉산더 남매는 주교의 집에 살게 된다. 이 지점에서 베리만이 보여주는 연출의 태도는 분명하며 절묘하다. 챕터 1의 공간이 되는 저택이 아늑한 색감에 넓은 공간감이었다면 챕터 2의 주교의 집은 냉랭하며 폐쇄적인 공간감을 느끼게 해 준다. 특히 두 곳에서의 식사 장면을 통해 이 대비를 분명하게 느끼게 된다. 주교의 영향 아래 있는 공간이기에 기도 등 엄격한 규칙이 종교의 미명 아래 행해지지만 막힌 창문과 단색의 잠옷, 통제된 하루의 일과 등은 어쩐지 그들의 성사를 속박의 구호처럼 들리게 만든다.
알렉산더는 주교의 옛 가족에 관한 이야기(주교의 첫 부인과 두 아이가 이들과 같은 고난을 당하여, 결국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불행히도 실패해 모두 사망하였다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거짓말을 지어낸 이유로 인해 주교에게 학대를 당하며 독방에 갇히기까지 한다. 허나 이후 유대인이 구해주는 과정에서 방에 누워있던 두 아이는 마치 알렉산더가 지어냈다고 생각했던 두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에 다시금 역설을 느낀다. 알렉산더의 이야기가 지어낸 것이 아니었단 걸까. 만약 그렇다면 유대인이 부린 '마법'에 대한 '개연성'이 생겨나지 않을까, 영화는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니까.
주교의 학대로 인해 알렉산더가 갇힌 독방의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공간이다. 구석진 곳 예수가 매달려 있는 십자가는 기울어져 있으며 알렉산더를 받치는 에밀리의 형상은, 영화라는 매체에서 자주 인용되는 피에타의 형상을 연상케 하듯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진실과 정의가 자신의 편'이라 확신하는, 종교의 권세를 악용하는 주교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한번 종교인의 그 독선적인 모습에 분노와 절망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남매가 탈출한 이후 향한 아론의 집은 '모든 것이 가능한' 공간이다. 알렉산더는 이곳에서, 앞선 두 번의 경험에선 눈으로 보기만 했을 뿐인 죽은 아버지의 형상과 대화를 나누며, 알렉산더의 욕망을 상징하는 듯한 이스마엘을 통하여는 걷지 못하는 주교의 숙모가 걷게 되며 그토록 바랬던 주교가 불에 타 죽게 된다. 진상을 위해 찾아온 경찰들은 주교의 죽음에 대해 단지 불운이었을 뿐이라는 말을 남길 뿐이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전개다, 괜찮다. 이 영화는 어린 남매가 주인공인 하나의 동화이자 인간과 종교를 고찰하는 우화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와 대화하며 집의 조각상이 살아 움직이는 신비로운 세계이기 때문이다. 베리만은 이 이야기가 기계적인 짜임새로 서술되는 장르적인 스킬 속에 귀속되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챕터 3은 남매와 어머니의 고난이 끝난 이후 챕터 1의 아늑한 공간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숱한 고통의 밤들이 지났으며 에밀리의 재혼은 비극으로 끝이 났지만, 그들의 가족은 이에 연연하지 않는다. 다시금 이들을 기쁘게 맞으며 건강하게 돌아온 이들의 행복을 축하해줄 뿐이다.
성대한 파티에서, 집안의 차남인 구스타프는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중략).... 그러니까 행복할 때 행복을 느낍시다. 사랑하며 친절하고 너그럽게 삽시다. 이 작은 세계에서 즐겁게 살아야 합니다.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맛있는 음식, 부드러운 미소, 꽃이 핀 과일 나무, 왈츠!"
잉마르 베리만은 <제 7의 봉인>에서부터 가족 단위로 행해지는 '작은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세상의 종교는 독선적이고 위선적이며 신은 침묵할지라도 지금 내 주변에 함께 하는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삶이 아니겠는가, 라며 베리만은 우리에게 다시금 묻는다.
"만질 수는 있어도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이 인간."
사실이 그렇다. 우리는 이 드넓은 세상에서 너무나 많은 역할을 맡는다. 알렉산더 가족의 연극처럼 세상을 향한 하나의 연극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삶을 살아가며 겪게 되는 수많은 사건의 흔적들 또한 끝없이 나와 함께할 것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혼령, 나에게 그리도 못되게 굴었던 주교의 혼령 같은.
나에게 드리워진 수많은 페르소나들이 나를 잠식한다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할 수 있을 때 행복을 느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이 작은 세계를 지키는 동시에 나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이 남매와 같이 예상치 못한 소동과 고난에 휩싸이게 될 수 있으니,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났을 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곳은 바로 지금 이 작은 세계가 갖고 있는 일상의 행복일 테니.
이 작은 세계에 행복하되, 단지 재미만을 추구하지 않길.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모든 게 가능하고 개연성이 있다. 시간과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얄팍한 현실의 틀 위에 상상은 새로운 무늬의 천을 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