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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파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바다는 파도가 있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우울의 정서를 담은 오즈의 영화는 있었지만 이정도까지의 영화는 없었다. 참혹하다는 표현까지 하고 싶다.
이 정도로 전쟁같은 분위기의 오즈 영화가 있었던가? 그의 트레이드마크 다다미숏이 이 영화에선 감옥처럼 느껴진다. <동경의 황혼>은 오즈 필모에 있어 의심의 여지 없이 변종이다. 오즈의 영화에서 드물 정도로, 오즈 세계 속 깊고도 오랜 갈등을 보여준다. 오즈의 영화에서 정말 드물게도, 그들의 얼굴에 강한 어둠이 드리운다. 심지어 그 어둠은 오즈가 영화에 '적극적으로' 드리우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백보다 흑이 많은' 흑백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아키코는 아버지 슈키치와 직접적으로 갈등을 겪고, 남편에게 질린 다카코는 친정으로 도망을 왔다. 키쿠코는 친자인 아키코에게 증오를 받는다. 그들의 관계는 회복이 될까? 갈등을 다룬, 시작부터 갈등을 제시하는 영화들을 보며 우리는 그들의 갈등이 해결되길 염원하며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허나 <동경의 황혼>은 갈등이 제시되면서 동시에, '안 될거라는' 체념이 배여 있다. 이는 좌절의 정서이며 서늘하기까지 하다.
사실 '오즈의 영화' 하면 무언가 서정적이고도 점잖은, '오즈스러움'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한 정서가 오즈의 특징 중 한 부분인 것은 사실이지만, 오즈의 영화가 신비로운 것은 영화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순간순간의 미묘한 뉘앙스들이 놀라울 정도로 냉정할 때가 있다는 점에 있다. 그것이 영화의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오즈는 마냥 따뜻하고 호락호락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것은 <동경의 황혼>을 통해서 아마도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아키코가 임신 중절을 위해 수술실로 들어가는 숏의 바로 다음, 오즈는 다카코의 딸 미치코의 모습을 배치한다. 수술을 마친 아키코는 집에 돌아오고, 그녀는 미치코를 바라보더니 울음을 터뜨린다. 이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이렇게까지 오즈가 지독한 사람이었던가.
<동경의 황혼>의 결말은 명백하게도 비극이다. 삶을 비관하던 아키코는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모르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녀의 친모는 그런 소식을 듣고 평생을 안고 갈 죄책감에 빠진다. 마작장의 남자들은 그러한 비극을 짐작하고도 철없이 농담이나 주고받는다. 오즈는 이 시점에서 잔인하리만치 '남겨진 자들'을 살게 한다. 아니 "살려둔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아키코는 삶이 끝났고, 키쿠코는 새로운 삶을 살려 하며, 미치코는 다시 삶을 살려 하고, 아버지 슈키치는 주어진 삶을 산다. 2시간 동안 지켜본 한 사람의 인생은 전쟁과도 같았지만, 그 한 사람의 전쟁이 끝나자 세상은 마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는 듯 일상을 회복한다.
'오즈스러움'의 정서를 상징하는 오즈 필모의 캐릭터가 <만춘>의 노리코라면 아마도 그의 대척점에 놓인 캐릭터는 <동경의 황혼> 속 아키코일 것이다. 모 평론가의 SNS 프사가 왜 <동경의 황혼> 아키코의 모습이었는지, 알 것만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