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열The Passion of Anna

1969 · 잉마르 베리만 · 스웨덴
정열 포스터
101분 · 드라마 · 출연 막스 폰 시도우, 리브 울만, 비비 안데르손, Erland Josephson · 촬영 Sven Nyk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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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혼자 살고 있는 안드레아스 집에 안나가 전화를 빌려 쓰기 위해 방문한다. 그녀가 잊고 간 손가방에서 우연하게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온 편지를 읽은 안드레아스는 안나에게 흥미를 갖게 된다.

에디터가 이 영화에 대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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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0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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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구겨지는 관계의 발버둥을 냉소로 포착하는 베리만

베리만의 모든 작품을 보지 못했지만서도 이 감독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필자로서, 이제는 확신에 가까운 감정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감정을 강렬하고 선명하게 포착하는 데 있어 베리만보다 나은 자는 없다. 본작의 포스터에서도 활용되는 리브 울만의 얼굴이 담기는 순간은 정말 놀랍다. 감독이 한 배우의 얼굴을 카메라 안에 어떻게 포착해야 하는지에 통달했을 때 완성되는 장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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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베리만을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영화는 매우 지루한 순간들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물론 그는 정말 독보적인 지점의 ‘순간’을 제공한다. 다만 그런 순간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시간은 거의 없다시피한 장력으로 매우 평탄하게 흘러간다.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느림에도 불구하고 지리하게 다가오지 않는 까닭은, 그가 내내 '시간을 붙잡아 두려는 방식'으로 영화의 러닝타임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반면 베리만은 자신이 관심 있는 ‘순간’ 외에는 거의 장력을 버리다시피, 시간을 방치해 두는 인상마저 준다. 여기서 말하는 장력은 서스펜스라는 장르적 기교와는 다를 것이다. 영화의 장력이란, 말하자면 연출자가 러닝타임의 매 순간을 변함없이 응시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순간’ 외에 무관심한 나머지 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지루함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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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열>에 등장하는 매우 흥미로운 연출을 짚고는 싶다.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 실제 배우가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해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분석하는 인터뷰가 삽입된다. 그렇게 총 네 번 등장하는 이 인터뷰는, 어쩌면 인터뷰의 형식을 취했을 뿐인 대본 안의 또 하나의 픽션일지도 모른다. 인터뷰의 내용이 실제 배우들의 생각인지, 아니면 베리만 감독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하나의 ‘시도’라는 점에서 중요해진다. 어쩌면 배우에게조차 자신이 맡은 배역은 끝내 완전히 동일화될 수 없는 ‘타인’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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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인물처럼 보이는 안드레아스와 안나의 관계에서도 반복된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보이는 안나를, 안드레아스는 진정으로 받아들이려는 인물처럼 보인다. 그는 혼돈 그 자체인 안나가 잠시라도 머물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줄 수 있을 것처럼 느껴진다. 관객 역시 그 가능성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와 기대는 모두 무참히 짓밟힌다. (물론 이 짓밟힘은 감독이 의도한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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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안나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질주하는 것인지, 관객도 모르고 안드레아스도 끝내 알지 못한다. 미친 속도와 차분한 사운드가 맞물려 폭발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낸 뒤에 밝혀지는 반전은, 안드레아스와 관객 모두에게 동일한 무력감을 안긴다. 인간은 결코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때로는 한 발짝 물러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타인을 이해하려 하고, 때로는 가장 가까이 다가가 타인의 모든 정보를 습득함으로써 이해하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도 인간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는 데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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