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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할 말을 쏟아내는 팬지. 주변과 끊임없이 부딪히는 그녀를 보듬어주는 사람은 여동생 샨텔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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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조차 서로의 공란을 응시하지 못한 채 미끄러지는 비극을 포착한 감독의 능력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관객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듯 영화는 팬지의 까칠함을 끝도 없이 보여준다. 치밀하게도 팬지의 폭주 다음에 이어지는 숏은 아주 ‘조용’하거나 ‘즐거운’ 장면들이다. 이 극단적인 ‘갭’이 팬지의 악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소란과 정적의 리듬이 반복되며, 관객은 점차 팬지의 세계 안으로 갇힌 듯한 감각을 느낀다.
생산적인 활동은 하지 않은 채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아들 모지스에게 화를 내며, 그러나 일견 익숙한 듯 기계적인 잔소리를 내뱉는 팬지. 일을 마치고 퇴근한 남편 커틀리에게도 그녀의 화는 번진다. 본인의 결벽증을 폭발시키는 듯 소리치고, 셋이 모인 식사 자리에서도 자선단체인들을 신랄하게 욕한다. 커틀리와 모지스는 익숙하다는 듯 눈을 맞추며 무시하자는 무언의 동의를 나눈다. 이 장면에서 팬지는 단순히 짜증이 많은 인물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부터 가족과 감정의 교류를 포기해버린 사람처럼 보인다.
그 공간과 정반대의 공간이 연이어 등장한다. 흑인 집단 특유의 흥겨움이 느껴지는 어느 미용실. 그곳의 한 디자이너는 고객의 이야기를 능숙하게 들어 준다. 그녀는 팬지의 여동생 샨텔이다. 집에서도 밝은 두 딸이 있는 건 그녀의 성향 덕분이었으리라. Mrs. Negative인 언니의 짜증마저도 능숙하게 받아주는 그녀는 언니보다 훨씬 성숙한 인물처럼 보인다. 팬지의 가정과 샨텔의 가정은 공간만큼이나 분위기가 극명하게 다르다.
그러나 팬지는 그렇게 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의 날을 기념해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에 찾아간 자매. 바빴던 엄마 대신 동생을 돌봤던 팬지. 동생 샨텔만을 예뻐했던 어머니. 자신은 애정을 받지 못한다 여겼던 팬지는 아마도 그때부터 세상을 즐기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선 이 결핍의 시간을 외면할 수 없다.
하지만 샨텔의 헌신으로 인해 팬지는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아들이 꽃을 사 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고맙다는 말과 함께 마치 응어리를 뱉어내는 듯 호흡을 뱉는다. 팬지는 조금씩 변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본작은 까칠하고 비호감이었던 주인공이 ‘그렇게 되어버렸던 이유’가 밝혀진 후 긍정적인 면모로 변화해가는 이야기일까? 그렇다면 본작은 흔히 보아온 서사일지도 모른다. (물론 흔하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저평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기민하게도 마이크 리는 이야기를 한 차원 확대한다. 그는 이 작품이 평이한 희극으로 끝나는 운명을 거부하고,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 지점에서 아주 천재적인 숏이 등장한다. 팬지와 샨텔 가족이 샨텔의 집 식탁 부근에 한데 모여 있는 순간을 담은 숏. 썩 역동적이진 않았던 본작의 화면비를 굳이 시네마스코프로 채택한 이유가 바로 이 장면이라는 확신이 든다. 모두 섞여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봐도 각 가정의 구성원을 골라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모두 함께 앉아 있지만 묘하게 불편한 감각이 흐르는 그 숏은 이 영화의 정수를 압축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팬지는 커틀리에 대한 분노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 그리고 커틀리 역시 팬지에 대한 분노를 품고 있다. 왜 우리는 지금껏 팬지의 분노에만 집중했던 것일까. 팬지라는 개인은 회복을 시작했지만, 팬지 가족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화해의 손을 내밀며 어머니께 꽃을 선물한 모지스의 행동 역시 아이러니하다. 그것은 어머니가 식물을 만지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아들이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병에 보관해둔 그 꽃을 곧바로 정원에 내다 버리는 커틀리의 모습은 여러 겹의 감정을 담고 있다. 질투, 분노, 혹은 무력감.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뒤섞여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업무 중 다쳐 집으로 돌아온 커틀리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자신의 방에서 전전긍긍하는 팬지의 모습과, 움직일 수 없어 어쩔 줄 모르는 커틀리의 모습이 교차되는 엔딩은 굉장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이 가족은 여전히 같은 공간 안에 있지만, 여전히 다른 마음에 있다. 팬지의 변화는 시작에 불과하며, 영화는 그 불안한 시작을 정교하게 붙잡아 둔 채 끝난다.
그리고, 영화의 주연 배우 마리안느 장-밥티스트는 아마도 올해 최고의 연기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