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탐구하는 데 있어 흥미가 있는 작품이다. 현수와 수진 둘의 위계는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1부는 액션-리액션, 2부는 액션에서 리액션-리액션에서 액션, 3부는 리액션-액션의 구도로 읽을 수 있다. 영화는 3부로 나눠진다. 그래서 이 영화는 두 번의 역접이 있다. 1부의 마지막은 후추의 '사망'이고, 2부의 시작은 생명의 '탄생'이다. 2부의 마지막은 '묶인 현수'이고, 3부의 시작은 '풀려난 현수'이다. 두 번의 변주로 이 영화는 끝날 때까지 '버릴 부분'이 없다. 근 한국 영화에서 드물 정도로, 특히나 감독의 데뷔작 중에서는 거의 없다시피 했던, 모든 순간 흥미진진한 한국 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현수의 (단순) 몽유병이 아마도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 기인했다면 이는 직업적인 부분에서 발생한 것이리라. 현수는 고용 안정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반대로 수진은 유산에 대한 두려움 또는 사라지는 '미'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자 그들의 두려움은 사뭇 다른 국면을 보여준다. 현수는 내가 아닌 내가 혹여 아이를 해칠까 두려워하며, 수진은 밤이면 괴물이 되는 현수로 인해 내 아이가 다칠까 두려워한다.
결말을 두고 아마도 크게 두 가지 해석을 할 수 있겠다. 현수가 '빙의되었음'과 '빙의되지 않았음'으로 나눈다면 아마도 더욱 상식적이고 주제적인 결말은 '빙의되지 않았음'일 것이다. 우선 전자라면 의사라는 인물 자체가 붕 떠버린다. 무엇보다 후자의 해석으로 넘어가야만 영화가 노골적으로 계속해서 강조해왔던 이들의 가훈인 '둘이 함께라면 해결하지 못 할 문제는 없다'의 떡밥과 조응시킬 수 있으며, '가정을 지킨다'는 수진의 행동과 '배우'라는 현수의 직업이 온전히 합일해서 이뤄낸 하나의 결과라고 읽을 수도 있으니.
오히려 더 우리를 옥죄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극중 인물들의 광기가 관객들에겐 채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자면 스크린이라는 장벽이 유난히도 느껴진 영화였다.
그리고 우열을 가릴 수도 없는 두 배우의 명연. 정유미 이선균 두 배우는 분명 한국 영화계의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