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에 모자이크를 다는 일을 하는 직원 '유조', 그리고 그 옆에 있는 한 여성. 일을 마치고, 화장실 밖에 버젓이 그녀가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자위를 하는 유조. 함께 만화를 볼 때 그녀가 그의 몸 위에 올라가 있는데도 유조는 불편한 기색이 없어 보인다. '개의치 않음'과는 미묘하게 사뭇 다른 느낌.
그에게 어떤 여성이 온다. 자신의 죽은 언니에 관한 다큐를 만들기 위해 관련자를 찾으러 다닌다는 그녀 사츠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지점이 생긴다. 과묵해 보이긴 했지만, 사츠키와 유조가 대화하는 도중 그 사이로 쑥 들어오는 (유조 집에 있던) 여성의 존재 말이다. 사츠키는 유조를 바라보며 말을 건네고 있음에도, 그 사이로 불쑥 들어오는 여성은 신경 쓰지 않는다. 여성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말이다.
미팅이 끝난 후 유조의 집에서 진실이 밝혀진다. 사츠키가 말하는 자신의 죽은 언니가 바로 그 여성이었고, 그녀의 이름은 미츠키. 그녀는 '귀신을 보는' 유조에게 들러붙어 있는 상황이다. 17년 전이자 고3 시절이었던 순진했던 유조는 방황하는 죽은 미츠키를 보곤, 빙의를 허락해 주었다고 한다. 유조는 카메라를 든 사츠키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고, 다시 한번 미츠키에게 빙의를 허락한다. 그 순간부터 관객, 혹은 카메라는 유조를 보지만, 정확히는 유조를 미츠키로 인식하게 된다. 여전히 반신반의하던 사츠키는, (유조의 얼굴을 한) 미츠키가 꺼내는 과거의 추억에 점차 설득당하고 만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정말 미츠키가 빙의한 것일까? 혹은 17년 동안 함께해온 유조가 미츠키의 기억을 흉내 낸 것일까? 개인사와 비밀은 곁에 오래 머문 자라면 누구든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정적인 순간, 사츠키가 언니의 존재를 믿고 눈물을 흘리는 사이, 유조는 무심하게 “다시 나로 돌아왔다”고 말한다. 그제야 사츠키는 자신이 농락당한 것 같은 분노를 느낀다.
천국은 아직 멀다. 미츠키는 천국에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며, 사츠키와 소통하고 싶어도 유조의 몸을 빌릴 수밖에 없는 운명에 묶여 있다. 사츠키 역시 언니와의 대화가 진짜였는지, 아니면 그저 한 남자의 기묘한 연기에 불과했는지는 오직 유조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빙의가 진짜든 아니든, 그 만남이 두 사람 모두에게 일종의 ‘테라피’였다면, 그것은 씁쓸한 조소처럼 느껴진다.
결국 영화는 묻는다. 인간은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금 떠오른다. 근래의 감독들 중 하마구치처럼 일관된 테마를 진정성 있게 밀어붙이는 이가 또 있을까.
<천국은 아직 멀어>는 빙의라는 장치를 통해, 소통과 이해의 가능성과 불가능을 동시에 비추어내는 흥미로운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