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들 중 가장 감정적인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우선 든다. 고통, 불안, 죄의식, 헌신과 같은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이 서로 얽혀 사건을 만들고 정서를 만든다. 물론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훌륭한 각본의 힘이 컸겠으나 그에 못지 않을 만큼 눈에 띄는 연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화를 디자인하는 눈에 띄는 요소는 붉은 색과 시계의 초침 소리이다. 전자를 이용해 이질적인 공간감과 강렬한 정서를 만들고 인물들의 백색의 옷을 시각적으로 분리시킨다. 또한 후자를 이용해 영화의 리듬과 묘한 텐션을 유지시킨다.
시퀀스가 전환되는 방식은 다분히 연극적인 방식으로 붉은 막이 페이드아웃&인 되는 방식이다.이 방식은 영화 내내 등장하는데 특히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갈 때 'whisper'와 클로즈업이 더해진 세 번의 연출이 그 중 눈에 띈다.
위에서 언급했던 대로 네 명의 인물들이 벌이는 감정의 얽힘이 가장 인상적이다. 사경을 헤메는 아그네스의 형상은 그녀가 느끼는 죽음의 공포감을 여실히 드러내주며 안나는 그녀를 간호하는 데 있어 마치 유사 모녀 관계 같은 구도를 보여준다. 마리아는 계산적이며 불안과 굶주림이 가득한 캐릭터이며, 카린은 무정하고 냉소적이며 때론 처절한 광기를 보여주는 인물이다.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며 촉발되는 광기의 강도는 내내 놀라웠다.
주치의와 주교가 등장하는 시퀀스에서 그들이 뱉는 대사들이 가지는 감독의 의도가 다소 직설적으로 다가와 조금 아쉬운 감이 있으며, 베리만의 영화들 중 가장 치밀한 영화이지만 한편으론 이 영화의 작법이 단지 기교 그 자체로만 기능하는 듯한 인상도 더러 받아 개인적으론 아쉬웠다.
나에겐 다소 난해하게 다가왔던 지점들도 있었지만 이 영화만의 강렬한 감정들이 벌이는 각축전은 그럼에도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