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견딘 위대한 영화를 볼 때면 경탄하게 되는 점이 있다. 어떻게 짧게는 40년, 길게는 100년이 넘은 영화임에도 어떻게 현대의 영화들보다 세련되어 보이는 지점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사랑은 비를 타고>가 그렇다. <사랑은 비를 타고>엔 등장인물들이 겪는 수난들이 단지 잠깐의 소동이리란 확신성이 존재한다. 그 점에서 혹자는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오프닝 시퀀스부터 할리우드가 가지는 과시성과 낭만성을 온전히 보여주는 듯한 이 영화는 100%의 순수함으로 오히려 대중들의 '촌스러움'이란 비판을 돌파하는 것 같다. 낭만은 수 년 뒤면 촌스러움이 되지만, 수 십년 뒤면 멋으로 살아남는다.
영화는 1926년, 그리고 1927년을 다루고 있다. 다분한 의도다. 1927년 세상에 유성영화가 등장했다. 이전까지는 무성영화가 영화의 모든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 소리 없는 영화를 혐오하는 자들도 존재했다. 연극배우 캐시 셀던이 그랬다. 누군가에게 그 시절 영화는 대사도 못하는 바보들이 등장하는 영상물이었고, 누군가에게 그 시절 영화배우는 생기없는 그림자나 연기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리고 유성영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관객은 뮤지컬 영화와 같이 이제껏 본 적 없었던 '글래머러스함'에 환호했다. 그로 인한 시행착오와 우여곡절들도 가득했다. 배우들은 이제 생기없는 그림자가 되지 않기 위해 발성을 연습해야 했고 촬영장의 형태는 완전히 달라졌다. 심장 소리가 녹음되고 모두는 바닥 가득한 전선에 낯설어했다. 서툰 편집으로 녹음과 싱크에 문제가 생기니, 소리가 더해진 영화는 우스꽝스러운 코미디였다.
그 우여곡절들마저 영화는 기어코 희극으로 승화시켜낸다. 잊혀질 뻔했던 무성영화의 스타가 돌파구를 찾은 후 기뻐하는 순간을, 가장 유성영화적인 방식으로 기념하는 (아마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할) 장면은 마치 두 시대를 관통하는 가교로서 완벽하고 또 씬 자체로서도 너무나 낭만적이다. 돈 록우드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사랑스러운 시선에 관객의 눈은 일치되는 것 같다.
영화의 태동이자 근본과도 같았지만 스러져간 무성영화에 대한 향수, 새로운 세계와도 같았던 유성영화에 대한 환희, 그 두 세계에서 모두 카메라 안에 담겼던 배우라는 존재에 대한 존중까지. 무성영화의 세계든 유성영화의 세계든 우리는 영화라는 것을 사랑할 뿐이다. <사랑은 비를 타고>는 영화에 대한 모든 낭만이 치사량으로 담겨 있다.
상술한대로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할 장면인 'Singing in the rain' 씬도 있지만, 돈 록우드가 캐시와 함께 촬영장의 장비들로 만드는 낭만의 순간도 잊으면 안 될 것이고, 후반부 광란의 뮤지컬 시퀀스도 오래 기억될 장면일 것이다. 무명 배우가 대중들에게 최초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엔딩의 따스함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