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말하고 가야 될 것 같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양자경은 정말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지만, 제 95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여우주연상은 케이트 블란쳇이 받았어야 했다. 케이트 블란쳇의 연기는 훌륭한 연기 그 너머의 것이었고 케이트 블란쳇의 빛나는 필모그래피에서도 세 손가락에 꼽힐 수 있는 연기였다. 보통의 경우 거칠게 말하자면 배우는 감독의 소품일 뿐이라고까지 생각하지만 이런 경우는 명백히 다르다.
블란쳇의 존재 한 명만으로도 영화의 밀도를 완벽하게 만든다. 롱테이크 연출이 많은데, 넓은 공간에서 발생하는 그 모든 여백감을 오롯이 짊어지고 끝내 부족하지 않게 채운다. 한 영화에서 한 배우가 거의 군림하다시피 한 경우가 있었을까.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 이상이다. 해당작은 폴 다노라는 훌륭한 배우가 안티테제로 세워져 있었기에, 원맨쇼로 따지면 이 영화가 1등이다.
그렇다면 본작은 위대한 대배우 한 명의 역량에만 기대는 태만한 작품인가? 토드 필드는 본작에서 '편집'이라는 요소를 영화의 동력으로 가져오는 감독이다. 말하자면 <TAR 타르>는 돌아보지 않고 전진하는 편집의 영화다. 토트 필드의 편집이 없었다면 블란쳇은 채 날개를 펴지 못했을 것이다.
리디아 타르는 철저하고 철저한 직선의 인물이다. 영화의 오프닝은 또다시 PTA의 작품인 <팬텀 스레드>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쇼케이스를 준비하는 리디아의 모습. 의상을 체크하는 그녀의 모습은 레이놀즈 우드콕을 떠오르게 한다. 그녀는 본인의 위치에 당당하고 자부심 또한 느낀다. 언어를 섞어 가며 오케스트라를 통제하는 모습에선 대단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편견에 사로잡힌 젊은 청년을 향해 겉으로 어떤 동요 없이, 침착하고 조용하고 이성적인 화법으로 그를 멸망시킨다. 딸 페트라를 괴롭히는 아이에게 직접 다가가 진심으로 협박하는 타르의 모습은 그녀가 세상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이렇듯 외적인 화려함에 반대급부로, 그녀는 홀로 있을 땐 끊임없이 내면을 갉아먹는 인물이다. 어떤 이도 전적으로 믿지 않는 인물이며 약에 의존하고 환청에 시달린다.
그러한 리디아에게 올가라는 인물이 다가온다. 식당에서의 대화가 일품인데, 같은 음악을 떠올리면서도 리디아는 음반을 통해 접했고 올가는 유튜브를 통해 접했다 말한다. 이렇듯 둘의 세대는 다르지만 리디아는 그녀에게 무조건적으로 사로잡힌다. 통제하는 자신의 삶에 균열을 가져다 줄, 자유로운 그녀 올가. 그녀를 블라인드 테스트하는 씬의 카메라 구도에서도 그렇듯, 미하엘 하네케의 <피아니스트>를 연상케 하는 지점이다.
마스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리디아 타르는 개인적인 욕망 때문에 모든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의 이제까지의 행적들로 인해 언젠간 터질 화약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의 몰락에 박차를 가하게 된 사건은 분명 올가와의 만남이다. 그 올가마저 실은 리디아를 이용했을 뿐이었고, 전적으로 자신의 편이었던 배우자 샬롯마저 떠난 전락의 시간들.
그러나 리디아는 진정 예술을 하고 싶었던 인물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 음악과 전혀 관련없는 일을 하려 하지만 끝끝내 자신의 위치로 돌아가는 그녀. 리디아 타르는 '어쨌든 예술가'였다. 그러나 자신의 전성기였던 곳과는 전혀 다른 무대와 음악. 과거에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게임 몬스터 헌터의 사운드트랙을 작업하는 모습. 과거에는 자신이 무대를 시작했지만 이제는 신호를 듣고 무대를 시작한다. 그래서 일견 그녀를 조롱하듯 장대하게도 울려퍼지는 몬스터 헌터의 사운드트랙. 그녀는 재기할 수 있을까. 지구 반대편에서도 음악이라는 예술은 연주될 것이지만, 아마도 리디아 타르의 커리어는 거기서 끝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