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에서도 느낀 점이지만, 수백 년을 살아왔다는 그들이지만 그 설정이 관객에게는 다다르지 못한다. 다시 말해, 그들의 삶의 무게, 지침이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의 무게가 관객에게 닿지 못하니 그 무거운 설정은 결국 설정으로만 남는다. 나라를 옮겨다니는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그저 "우리도 007이나 미션 임파서블처럼 대단한 스케일을 자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그렇지만 정작 이야기의 야심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이 정도 로케이션과 설정이면 훨씬 더 밀도 높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앤디와 꾸인이 만나자마자, 대뜸 격투 장면이 벌어진다. 배우를 활용하기 위한 장면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을 만큼, 이야기의 흐름상 상당히 뜬금없는 전환이었다. 위화감이 컸다. 꾸인과 앤디 사이의 갈등은 극중 가장 공들인 드라마였을 텐데, 정작 그 봉합 과정은 나이브하게 그려졌고, 정서적 축적은 생략되었다. 부커의 행적도 의문스럽다. 그는 영생이 싫어서였지, 당장 죽고 싶어 했던 건 아니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사가 사라진 후엔 마치 하루빨리 죽고 싶다는 듯 사실상 자결의 길을 택한다. 그의 선택이 감정적으로 와닿지 않는 이유다.
최종 결투 역시 호들갑에 비해 아쉽다. '킬 빌'의 우마 서먼과 샤를리즈 테론의 대결이라니, 상상만으로도 기대가 컸겠지만, 두 배우의 연배 때문이었는지 인상적인 액션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칼을 몇 번 맞대는 수준의 결투, 카메라만 몇 번 흔들릴 뿐인 장면. 허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무게가 잠시나마 설득력 있게 다가온 장면이 하나 있다.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플래시백 장면이다. 그들이 수백 년을 살아왔다는 설정이 유일하게 인상적으로 활용된 순간이었다.
여담이지만, 할리우드 작품이 한국 로케이션에서 촬영할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한글 간판'. 그들이 보기에 한글은 기하학적이고 ‘힙’하게 느껴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