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낯섦'의 정서는 분명 헨젤과 그레텔의 맥을 같이한다. 어른들이 사라진 세계, 아이들이 모든 것을 감지하고 판단해야 하는 세계는 본래부터 기묘한 긴장을 품고 있다. 본작도 그런 정서에서 출발한다.
샐리 호킨스라는 인물 자체가 일종의 스포일러 같기도 하지만, 그들이 만난 새엄마 로라는 첫 만남부터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노골적으로 앤디를 배척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파이퍼 앞에서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 앤디의 폰을 강제로 훔쳐보는 장면에서 그 불쾌감은 점점 확장된다.
그렇게 '미심쩍은' 정도로만 흘러가던 영화는, 올리버의 끔찍한 모습이 등장하는 순간 본색을 드러낸다. 그저 과묵한 아이인가 싶었던 그가, 갑자기 문을 부수고 피투성이가 되어 날뛰는 모습은 관객에게 이 영화가 보통이 아닐 것임을 선언한다. 이후로도 상식을 깨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피투성이가 된 채 개의치 않고 칼을 씹어먹는 올리버의 모습은 특히 그렇다. '아이'를 대상으로 이러한 표현을 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지양되는 것이 영화 문법의 하나인데, 이 영화는 그런 '상식'을 의도적으로 돌파한다.
아이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자연스럽게 ‘성장 영화’라는 테마를 불러오지만, 본작은 예외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성장을 이루지 못한다. 성장할 수 없는 성장 영화다.
본작은 철저히 필연성에 따라 전개된다. 로라의 집이라는 공간은 강력한 규칙이 작동하는 세계이며, 그 규칙과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이 흘러간다. 그리고 그 규칙을 깨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사건이 터진다. 로라는 단순한 악역이라기보다 이 규칙의 관리자에 가까운 존재다.
그런 맥락 속에서 후반부는 예측 불가능하게 흘러간다. 앤디는 결말에 이르지 못하고 사망하며, 파이퍼는 결국 혼자의 힘으로 그 집을 탈출한다. 로라는 누구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은 채 스스로 죽으며 퇴장하고, 최종 빌런처럼 보였던 올리버는 오히려 스스로 탈출해 다시 버드로 돌아간다. 어느 것 하나 뻔하지 않게 흘러가는 결말의 배치는 이 영화의 묘미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한 점은 남는다. 영화의 고어함은 대부분 ‘고어를 위한 고어’로 느껴진다. 다시 말해, 그 자극적인 장면들이 모두 빠지더라도 영화의 줄거리나 정서가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미스터리 스릴러’로만 흘러갔다면 더 탄탄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왜 굳이 그 ‘불쾌한 고어의 층위’를 추가했을까? 단지 장르적 장식 이상을 추구했다면, 그 의도는 조금 더 분명히 드러났어야 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