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BT를 소재로 가진 영화는 지나치게 性적인 이야기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에밀리아 페레즈>는 그깟 '소재'보단 그 너머의 이야기를 한다. 우선 성 소수자를 앞세워 "당신들은 우리를 인정해야만 한다!"라는 식의 교조적이고 일견 권위적인 태도를 본작은 보이질 않는다.
여타의 논의를 차치하고서도 <에밀리아 페레즈>는 그저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 충분한 재미를 선사하는 영화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고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에, 정적은 죄악이라고 느끼는 듯 숨쉴 틈 없이 엔터테이닝을 제시한다. 하나의 실험처럼 보이는 본작의 '장르 혼합'은 이질적이면서도 낯선 즐거움을 제공한다. 멜로와 뮤지컬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범죄&스릴러의 특색이 곳곳에 즐비하고, 범죄의 한가운데 있던 인물이 타인의 행복을 보며 사랑을 느껴 사회 운동가로 변신하는 사회 드라마로서의 진지한 면모도 갖추면서도, 모금 행사의 인원들을 자신의 옛 인연이었던 부패한 자들로 채운 코믹한 장면 등 코미디의 요소가 들어가 있다.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한 흔치 않은 작품이기도 한 본작은 유사품을 찾아보기 어렵다.
총격전이 벌어지는 혼란스런 공간의 한가운데서 제시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는 페레즈의 장면은 본작의 어떤 장면보다 진정성이 함유되어 있기에, 그 시퀀스의 기승전결이 쉽게 예상되는 흐름이었음에도 정서적으로 강력한 성취를 이뤄냈다.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의 비극성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동승자 3명을 그야말로 '죽여버린' 것은 위험한 선택처럼 느껴지기에 아쉽다. 관객이 판단할 일에 영화가 알아서 답을 내려주는 장례식 장면도 아쉽기만 하다. 최후반부의 몇 분간은 영화의 소재마냥 급진적이다. 이렇듯 본작의 공격성이 몇 가지 리스크를 남긴다.
조 샐다나는 왜 자신이 할리우드에서 선명하게 살아있는 배우인지 다시금 증명해냈다. 위대하다고까지 말하고 싶은 명연이었다. 그녀가 여우주연상을 받아도 납득이 갈 정도였지만, 레이스를 위해 그녀를 조연으로 분류한 것이었을 테다. 칼라 소피아 개스콘의 연기 또한 훌륭했다. 그녀만이 선보일 수 있는 연기가 아니었던가. 영화 외적으로 상당히 미성숙한 태도를 보인 그녀였지만, 적어도 본작에서의 퍼포먼스는 아주 대단했다. 물론 그렇다 하여 <아노라>의 마이키 매디슨을 넘을 만한 모습이라는 말은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