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핀처의 <세븐>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배우들의 연기? 서스펜스? 흥미로운 이야기? 나에게 있어 <세븐>은 독보적일 정도로 음습하고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분위기'로 기억된다. 빌런보다 영화 속의 세계가 더욱 지긋지긋하고, 이 세계에서 좀처럼 빠져나가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가장 큰 무서움으로 작동하는. 그러부터 30여년이 지난 뒤 등장한 본작 <폭탄>은 오프닝 타이틀 롤부터 <세븐>을 물씬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범죄 영화다.
<폭탄>의 무대의 공간은 간단하다. 대부분이 취조실에서 진행되고, 그 메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서포트하는 다른 공간들의 이야기가 삽입되어 있다. 이야기 또한 간단해 보인다. (상대적) 경범죄로 잡혀 온 스즈키가 헛소리처럼 들리는 말들을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며 모두가 그를 주목하게 되어 그를 취조하며 정보를 얻어내려는 경찰들의 사투를 그린 이야기. 언뜻 <양들의 침묵>의 모티프를 차용한 것처럼도 느껴진다. 다만 <양들의 침묵>이 (탈옥을 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주인공 한니발 렉터를 보여준다면, 본작은 마치 히키코모리의 이미지를 가져온 듯한 캐릭터를 가지고서 천진난만함과 우울함과 섬뜩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캐릭터를 보여준다. 한니발 렉터가 도무지 우리네 세상에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인물이었다면, 스즈키 타고사쿠는 우리와 함께 사는 이웃 중 한 명일 것만 같은 기시감에서 비롯되는 섬뜩함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한니발 렉터를 연기한 안소니 홉킨스의 연기가 전설이 되었듯, 본작의 스즈키를 연기한 사토 지로 또한 전설이 될 만한 모습이었다. 한니발 렉터 반대편엔 클라리스 스털링이 있었듯, 스즈키 반대편에 있는 루이케. 그 루이케를 연기한 야마다 유키 또한 놀라울 정도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세븐>의 껍데기에 <양들의 침묵>의 정수를 담아낸 <폭탄>이다.
본작은 서스펜스보단 미스터리가 강한 영화다. 서스펜스보다 미스터리가 강하다는 말은, 서스펜스가 특별할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고 바꿔 말 할 수도 있겠다. 본작이 서스펜스를 축조하는 방식은 상대적으로 어설프다. 공간에 제약이 있는 본작의 설정 때문이었을까. 특히나 취조실에서의 장면들은 성급하게 감정을 빠르게 고조시키려고 하는 음악이나, 강박적으로 취조실의 모든 인원을 한 번씩은 비추는 정신 없는 시점 숏이나, 과한 산만함이 서스펜스를 절단낸다. 미스터리는 여전하지만 스릴러는 힘을 얻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탄>의 미스터리는 절묘하고 흥미롭다. 그 미스터리는 대부분 스즈키라는 의문스러운 인물에 대한 것이다. 이 인물이 조력자인지 피의자인지, 그가 진정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자인지, 의문투성이인 질문들만을 던지는 이 인물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 온 자인지.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스즈키에 대한 미스터리는 어쨌든 풀리게 되지만, 그 스즈키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인물들의 얽히고설킨 미스터리가 드러난다는 것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스즈키를 처음으로 취조했던 토도로키와 영화의 메인 빌런인 타츠마와의 관계, 스즈키만큼이나 의문스러운 루이케, 코우다나 아스카 등 영화의 모든 인물들이 팽팽하게든 느슨하게든 연결되어 있으며 저마다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미스터리한 인물 하나를 탐구하면 미스터리한 인물 열 명이 드러난다.
추리 영화의 외피를 분명 가지고는 있지만, 영화의 대부분이 대사로 서술하는 방식이기에 관객이 능동적으로 추리하는 형태를 가지지는 못하며, 스즈키의 미스터리가 영화의 후반 들어 다소간 맥없이 밝혀지는 것이 장르적으론 기대한 만큼의 쾌감을 선사해주지 못해 아쉽다 할 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정수는 장르적 쾌감이 아니라 불가해하고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탄식이었기에 그 밋밋한 서술이라는 감독의 선택마저 지지를 보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