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날씨 등 오프닝의 상당히 감정적인 씬이 시대를 상기시킨다. 소재 또한 그렇다. 이 시기만 해도 아직 '간첩'에 대한 사람들의 인지가 있었을 때 아니던가. 이제는 간첩이라는 개념이 많은 이들에게 이입될 만한 것은 아닐 테다. 다만 그래도 어설픈 멋을 시도하지는 않은 채 스스로의 방향성을 관철시키는 태도는 좋았다. 수 년이 지나 구식이 된 것이 수십 년이 지나면 클래식이 되기도 하지 않던가.
근본적으로 "우리도 할 수 있다" 식의, 할리우드에 대한 컴플렉스가 느껴지는 작품이었기에 본작만의 개성이 선명한 작품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지축을 뒤흔드는 총소리나 차를 은폐물로 활용하는 여러 구도 등 비슷한 시기 할리우드에 있었던 <히트>를 절로 연상케 하는 여러 총격전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어설픈 특수효과들이 있었지만 그 스케일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드라마가 꽤나 통속적인 측면이 있긴 하지만 배우들의 연기가 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 지금 시점에서야 그들 모두 위대한 배우로서의 명성을 가지고 있지만, 1999년 당시에야 그들 모두 많아봐야 30대 중반의 나이였기에, 혈투와도 같은 그들의 연기대결이 더욱 놀랍다. 이방희의 정체를 알게 된 유중원(한석규)의 떨림은 시대를 지배했던 배우 한석규의 빛나는 순간들 중 한 장면으로 넣을 만하지 않을까.
무엇보다 김윤진과 최민식의 연기가 놀라웠다. 대한민국에서 악역을 가장 잘 하는 배우는 최민식이라 언제나 생각했기에, 날개를 단 듯한 최민식의 불을 뿜는 연기들이 감탄스러웠다. 말이 좀 웃기긴 하지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연기였다. 두 말할 필요 없는 본작의 진 주인공. 또한 김윤진은 특유의 말투가 오히려 신비스러운 면모를 강조해 주었고 본작에서 그야말로 팔색조 같았다.
먼저 알고 나중에 알고 서로를 묘하게 의심하게 되는 유중원(한석규)와 이장길(송강호)의 구도도 흥미진진한 부분이 있다. 다만 이장길이란 인물이 (제법 분량이 많은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유중원이란 인물 외에는 어떤 인물하고도 케미가 두드러지지 않는 면이 있기에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