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검사>는 명백한 형태의 구조를 띄고 있다. 프롤로그 격에 해당하는 '불타지 않은 편지'의 오프닝과, 에필로그 격에 해당하는 기차 하차 이후 동행 장면의 엔딩이 양 끝에 존재하고, 그 사이에는 '주인공과 한 인물의 만남의 여정'이 길게 제시된 뒤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장면이 데칼코마니처럼 붙어있다. 말하자면 프롤로그-만남1-이동1-만남2-이동2-에필로그. 이 선명한 구조는 조금의 변주이자 완전한 반복이다. (영화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에필로그에서 주인공은 프롤로그의 공간으로 돌아오기에,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각각 1부와 2부로 할당하는 것이 합당하겠다.)
이 구조는 흥미로우면서도 잔인한 서술 트릭을 지탱한다. 그 서술이 흥미로운 까닭은 구조적으로 1부는 과거이자 절망, 2부는 미래이자 희망처럼 읽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검사이자 열혈 당원이었지만 지금은 실권한 채 지하 구덩이에 쳐박혀 있는 스테프냐크를 통해 '인민'들을 다루는 엄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팔다리가 잘린 채 레닌을 알현하러 향했던 이야기를 늘어놓는 (비위생적인 공간에 탑승객들로 가득차 마치 러시아의 당시를 상징하는 듯한) 기차의 노인을 만나는 1부. 러시아의 심장부 모스크바의 현직으로 있는 (코르녜프의 이야기를 제법 긍정적으로 경청하고 호응해주는 듯한) 검찰총장 비신스키를 만나 증서와 약속을 받고, 의학적 증거를 얻어오기 위해 다시 브랸스크로 향하는 기차에서 (공장을 설비해) 브랸스크의 미래를 설계한다고 하는 엔지니어 페타와 바실리를 만나고, 그들과 함께 기타를 치며 조국의 희망을 노래하는 2부. 반전이 드러나는 에필로그가 아니라면 (물론 그 사이사이에도 이 이야기의 결말이 예감이 가기도 하지만) 그때까지의 서술은 명확히 나뉜 구조의 이점을 더해, 또 1부와 2부 모두 지루한 기다림을 버텨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주인공의 모습이 관찰되었기에, 절망의 과거에서 희망의 미래로 변하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서술이 잔인한 까닭은, 이 이야기는 이미 결과가 명확한 이전날의 역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지식적으로)그 결말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본작의 이야기도 결코 희로 끝나지 않으리라 짐작하지만, 그러면서도 희망을 부르짖는 사람들과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보고선 그들을 동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NKVD의 이러한 부정한 행동들을 스탈린에게 알리라는 (아마도 아직 그 스탈린을 믿었던 것 같은) 스테프냐크, 레닌 시기 좌절을 맛보고 이번엔 '그렇게 인정이 많다고 소문난' 스탈린을 찾아가는 노인, 애송이 검사라 소장과 간수들에게 대놓고 무시와 위협을 당하지만 그럼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권리와 원칙을 지키려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코르녜프까지. 스테프냐크와 같은 지식인마저 순진한 패배자로 보이게 하는, 1937년 러시아에 노인을 위한 공간은 없었다는 사실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연출적으로도 치밀한 접근이다. 특히나 1부의 장면들에서, 인물들의 직선적인 움직임이 눈에 띈다. 인공적이다시피 할 정도로 그들은 직각으로 움직인다. 옆으로 걷고, 지하에서 수직으로 올라온다. 대각선의 움직임은 거의 배제되어 있다. 묘한 압력과 삭막한 분위기를 저절로 체감하게 만든다. <순응자>와 <사울의 아들>이 떠오르는 공간 디자인과 카메라의 사용 방식은 숨이 막힐 정도의 흔치 않은 압박감을 안긴다.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듯한 공간과 그 곳의 인물들, 오로지 목적만을 위해 돌아가는 시스템, 건조함을 강조하는 공간과 영상의 색감들까지를 보면 이 영화가 필름메이킹의 모든 면모에서 매우 우수한 완성도를 보인다고 평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