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스타일이 그렇기도 하지만 특히 이 영화는 '제 4의 벽'을 깨며 관객에게 말을 건네거나 용어를 설명하는 장면들이 많다. 영화라는 매체에서 다루기엔 제법 전문적인 소재와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이를 엘리트적인 화법으로 다루려 하지 않는다.
크리스찬 베일이 보여주는 '흘리는' 연기들이 있다. 장면 장면마다 힘을 잔뜩 주고 연기해 관객들이 언뜻 부담스럽게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있는 반면, 크리스찬 베일과 같이 배우의 '연기'가 앞서 보이지 않고 영화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이러한 연기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멈블같은 느낌으로 중얼거리는 그의 모습은 이미 다른 영화에서도 보았지만, 정말 그런 모습들은 대체 불가다. 그만이 할 수 있다.
영화의 초반부터 조롱에 가까운 블랙 코미디 화법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중후반부부터 사태가 진정 눈앞에 왔을 시기부턴 영화의 분위기가 급속하게 냉각되는데 이 순간부터 느껴지는 섬뜩함이 일품이다.
영화 끝까지 '설명의 형태'에만 집착하는 듯해 질척인다는 느낌이 조금 걸리지만 그럼에도 이런 류의 영화는 여전히 신선하고 여전히 그 수가 적다. 모 평론가의 말대로 충무로에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