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에 비장함이 깃들게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모노노케 히메>는 이를 가능하게 한다. 필연적인 모험, 낯선 공간, 새로운 인연. 전형적인 활극의 틀을 지니면서도 그 너머로 확장된다. 애니메이션 영화를 평가할 때 내가 가장 중요히 여기는 것은, "저 세계가 실제로 존재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지에 있다. 단순히 움직이는 그림책이 아니라, 정말 지구상 어딘가에 존재할 법한 세계라는 인상을 줄 때 비로소 훌륭한 작품이 된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몰입감을 준다. 끝없이 확장되는 공간과, 매 순간 매력적인 캐릭터들. 풀들이 돋아나는 장면 같은 양식적인 순간들이 있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한 방식은 정말 아름답다. 숲의 정령들이 살아 움직이는 세계는, <아바타> 이전에 이미 이 영화가 있었음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애니메이션 영화에서 이 정도의 스케일을 이 정도의 완성도로 표현한 작품은 흔치 않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갈등을 다루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영화 속 누구도 '절대 악'으로 비춰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타타라 마을의 리더 에보시는 가장 악역에 가까워 보이지만, 그녀의 행적은 한편으론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행동들이기도 했음을 관객은 인지할 수 있다. 멧돼지 일족이나 모로 일족이 피해자처럼 그려지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그들은 생존을 위협하는 적이었다. 선과 악이 단순히 이분법적으로 나눠지지 않고, 그저 각자의 입장에서 불가피한 행동들이 충돌할 뿐이다.
타타라 마을과 숲을 오가는 아시타카의 캐릭터도 인상적이다. 결점이 없는 인물이라는 특징 자체가 흔치 않지만, 그는 어떤 지존자처럼 어느 한편에 서서 정죄하지 않는다. 편향되지 않은 그의 태도는 영화 전체의 태도와 닮아 있다. 팽팽하게 시작하고 그 균형이 유지된 채 끝난다. 얼핏 보면 변한 게 없다 말할 수 있겠지만, 분명한 변화는 존재한다. 타타라 마을과 숲, 서로의 가슴에는 상대방을 향한 이해와 화합의 싹이 틔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가의 야망은 자신만의 세계를 축조하는 것이라 한다.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감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모노노케 히메>는 바로 그 세계를 견고히 세워냈고, 관객은 그 안에서 비장한 숨결을 체험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