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영화보다 유명할 '가브리엘의 오보에' 장면이 인상적이라는 것은 우선 동의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그 장면의 공로는 롤랑 조페에게 있지 않고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있다. 하지만 그 장면의 편집 논리에 있어서는 조금 궁금한 점이 있다. 왜 폭포를 올라간 뒤 그는 다짜고짜 오보에를 연주한 것일까? 잡혀 있는 파충류를 보기는 했지만 별다른 인기척이 있었거나 인간의 모습을 본 것도 아닌데,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자신의 위치를 드러내는 연주를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두려움을 잊기 위한 단순한 연주였을까? 아니면 그 아름다운 선율이 말하자면 '선교의 첫 문' 역할을 하도록 구성된 것일까?
메인이 되는 이야기는 과라니 부족이 관여된 이야기겠지만, 소품처럼 들어 있는 로드리고의 이야기는 오히려 본작의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사랑으로 인해 동생을 죽이게 되었으니 자신은 절대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 체념한 로드리고. 그러나 몇 번이고 '속죄의 길'을 제안하는 가브리엘로 인해 마치 "내가 실패하더라도 지켜볼 테냐?"라는 식으로 그 길에 동행하게 된다. 험한 길을 짐까지 지고 계속해서 오르는 그의 수난이 이어지고, 드디어 (자신이 부족들을 사냥해 문명의 사회에 팔아 넘겼던) 마을에 도착한 로드리고는 진정한 반성과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날카롭고도 성취욕에 사로잡힌 눈빛이었던 이전의 로드리고와는 달리, 참회 이후의 그는 눈빛부터 다르다. 이 영화에서 로버트 드 니로는 순수하게 자신의 연기력만으로 놀라운 존재감을 발휘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 때 드라마는 그리 재미있지 않다. 절대 선과 절대 악의 대결 구도로 단순화된 갈등 구조는 진부하며, 인물들의 행동 동기나 선택이 너무 교과서적으로 정돈되어 있다. 특히, 사랑 vs 폭력의 대립을 중심축으로 삼은 영화의 연출이 오히려 정반대의 효과를 낳는다. 사랑과 희생의 서사를 강조하고 싶었다면, 폭력의 묘사는 절제되었어야 하는데, 이 영화는 폭력을 써서라도 저항하겠다는 로드리고 일행과, 그들을 무력으로 제압하려는 편 간의 전투 준비 과정을 매우 장르적으로 묘사한다. 이 충돌은 사랑 vs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폭력이라는 이상한 구도로 느껴진다.
무엇보다 불편한 점은 '위에서 내려다보는', 겸손하지 않은 '시혜의 시선'이다. 추기경의 방문 장면은 소름 끼치기까지 했다. 모두가 흰 옷을 입고 합창하고, 번듯하게 이발을 한 채 서양식 악기를 만드는 ‘문명화된’ 모습. 그들이 믿음을 가졌다는 사실보다, 그들이 우리의 문명을 따랐다는 사실을 더 알리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문명화'의 동의어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본작은 그것을 거의 동일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결국 영화에 대한 감정은 감동이 아니라 안타까움에 가깝다. 희생과 순교를 하면서도 복음을 전한 이들을 보며 느끼는 감동보다, 그들의 복음과 문명의 불꽃 속에서 스러져간 부족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더 깊게 남는다.
이미 수 백번 불을 뿜은 담론이었지만, 나 역시 같은 의견이다. <희생> 대신 본작을 선택한, 칸 영화제 역대 최악의 결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