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제목이 '악령'이 아니라 '악령들'인 이유가 있다. 이 광기는 개인이 아니라 전체의 문제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인 1634년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최악의 시기라 불릴 만 하다. 밖으로는 페스트가 창궐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안에서는 개신교와 가톨릭 간 종교 갈등이 첨예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술은 상상도 못할 민간요법이며, 수도원은 성적 욕망에 굶주려 신성은 이미 깨뜨린 지 오래 된 수녀들의 집합소이다. 타락한 자가 타락한 자를 연모하며, 주님의 이름 아래 수많은 악행들이 자행된, 이곳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세상에 나온 1971년에도, 21세기 현재에 나왔어도, 어떤 시대에 나왔어도 많은 논란이 되었을 영화다. 허나 나는 이 영화를 신성 모독의 영화라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면서도 죽는 그 순간까지 악마의 종이 될 수는 없다 울부짖는 그랑디에 신부의 모습에서 나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성스러움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기독교의 속을 고발하는 동시에 한 줄기 희망의 불씨를 밝히는 영화다.
연기, 음악, 미장센 등 모든 것이 과할 정도로 강렬하지만 조절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영화 중반의 '환각 파티'는 지금의 기준에서도 심히 충격적인 수위다. <베네데타>, <아이즈 와이드 셧> 등 종교나 성(性)에 있어 파격적인 작품들은 많았지만 <악령들>은 이를 1971년에 성취해냈다. 연출가 켄 러셀과 미술감독 데릭 저먼은 악마의 왕국을 건설했다. 그곳에서 미친 듯 날뛰는 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퍼포먼스는 역사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