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넷 밀러 감독의 전작에선 정적이면서도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재기가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에선 그딴 거 없다. 일부러 그런 것들을 최대한 자제한 느낌이다. 시종일관 정적이고 건조하며 놀랄 정도로 차가웠다. 이야기는 굉장히 다르지만 영화의 톤앤매너는 하네케의 <하얀 리본>을 연상케 했다.
열등감과 자기연민에 늪에 빠진 개인에 더해, 실체 없이 껍데기만 치장하는 미국식 영웅주의의 허상을 고발하는 내러티브는 분명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것을 가능케 한 가장 큰 공로는 단연 배우들의 열연일 것이다. 세 명의 주연 배우들이 모두 훌륭했지만 특히 스티브 카렐의 연기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몇 달간 내가 본 영화들의 연기들 중 한 손에 꼽힐 만한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열등감과 결핍이 켜켜이 쌓여가다 광적으로 내뿜는 순간들이 보여야 하는 인물인데 그 어려운 것을 카렐이 해냈다.
사실 전작인 <머니볼>은 오락적인 재미도 충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나 이 영화는 오락적인 부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재미없어할, 그런 영화겠지만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