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입자Stalker

1979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 소비에트
잠입자 포스터
162분 · SF · 드라마 · 출연 Алиса Фрейндлих, Александр Кайдановский, Анатолий Солоницын, Микола Гринько · 음악 Эдуард Артемьев · 촬영 Александр Княжински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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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의 이름없는 이 도시는 '구역'이라는 곳으로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외계의 공간이라 알려져 있다. 아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토커라는 이름의 한 사내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걸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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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믿음의 발자취에서 시작되기에

타르코프스키(이하 탈콥)의 5번째 영화다. 사실 하루에 한 편씩 탈콥의 영화를 정주행하고 있었지만 <거울>이 러닝타임이 짧기도 했고 시간이 많이 남아 하루에 탈콥의 영화 두 편을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탈콥 영상미의 정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폐허 디스토피아 속에서 인상적인 아름다움을 뽑아낸다.

특히 본격적으로 구역에 진입할 때의 장면은

초반의 누런 흑백 화면과 대비를 이루며 굉장한 영화적 순간을 불러오는, 아름답다라는 표현 한마디론 너무나 부족하다.

스토커를 제외한 두 명이 작가와 과학자라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둘은 각각 문학과 과학 분야를 대표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스토커를 종교 지도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세 주인공이 의미하는 것은 신학/문학/과학. 즉 이 여정은 결국 인류의 여정을 축약한 것이라 생각하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의식은 채식주의를 원하는데 무의식의 한편에서는 육식을 원한다며, 자신이 세상의 모든 물건에 이름을 붙이면 모든 것은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는 등

세상에 대한 절망적인 감정을 표출한다.

과학자도 이와 동조되는 인물로 볼 수 있다.

2부의 시작점에, 스토커에게서 나오는 대사가 있다.

"견고하고 강건한 것들은 죽음의 무리이며

유약하고 연약함은 곧 새 생명의 신선함이니

강건한 것들은 결코, 승리할 수 없도다."

이 대사는 지극히 기독교적인 관점으로 읽힌다.

지금의 인류는 너무 강하다. 인류의 지식은 너무나 견고하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구절이 있듯이.

금지된 구역. 이곳엔 탱크의 잔해가 있다. 꽃은 향기를 풍기지 않는다. 작가와 과학자는 자주, 서로에게 화살을 날린다.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기에 이른다. 스토커는 이들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스토커는 이어 환상을 경험한다. 이곳에서 스토커가 경험하는 환상 속에선 종교적 예술 작품, 총, 주사기, 종이, 동전 등 문명의 발달을 의미하는 듯 보이는 것들이 폐허 속 고인 물에 잠겨 있다.

이어 내레이션은, 요한계시록 6장 12절에서 17절의 구절을 암송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와 연결짓자면, 이 장면에서의 내레이션은 스토커의 딸로 생각된다.)

아래는 그 중 15절부터 17절의 구절이다.

".....천하의 왕들과 위대한 사람들.

부자들과 고관대작들.

강자들과 자유민들.

모두 산속의 바위굴로 숨어들어갔어.

그들은 산과 돌에 말했지. '우리의 몸을 덮어다오.

왕좌의 앉으신 이의 눈으로부터 우리를 숨겨다오.'

순결한 어린 양의 분노로부터, 그분의 분노가 닥치는 위대한 그날, 그 누가 살아남으랴."

영화는 탈콥의 영화치고 이례적으로, 전자음악이 등장한다. 위 장면에서도 역시 불완전한 전자음악이 흐른다. 영화 전반적으로 가라앉고 기묘한 분위기 속에, 음악 역시 디스토피아적 모티브에 일조한다.

작가는 구역에서 세상에 회의를 느낀다.

"사람들을 바꾸고 싶었어, 하지만 도리어 내가 변했지."

스토커는 말한다.

"중요한 것은, 믿어야 한다는 거야."

과학자가 배낭에서 가지고 온 것은 20킬로톤짜리 폭탄이었다. 이곳은 누구에게도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며 이 구역이 존재하는 한 나쁜 놈의 손에 들어가 악용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스토커는 이를 저지하려 시도한다.

인간이 세상에서 가진 건 희망밖에 없으며, 이 구역이 사라지면 희망도 사라지니 희망을 부수려 하지 말라 말한다.

작가와 과학자는 스토커를 위선자로 취급한다.

"넌 사람들 따위는 관심 없어! 돈을 벌려는 거지. 우리의 열망을 이용해서! 돈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지. 넌 장난을 치는 거야. 여기선 네가 신이니까. 이 위선자! 생사를 결정하는게 너니까! 못된 꿍꿍이를 하는거야. 왜 스토커가 그곳에 직접 안 들어가는지 알겠군, 제멋대로 권력과 신비와 권위를 주무를 수 있으니까! 그러니 무슨 소원이 있겠어?"

인류는 끊임없이 선지자를 불태웠다.

희망을 전하는 선지자를, 위선으로 취급하곤 했다.

세상은 자주, 희망을 망상으로 치부한다.

영화에서의 흑백 화면은 절망적인 현실 혹은 종말로 생각된다. 반대로 컬러 화면은 희망, 혹은 충족의 공간으로 읽힌다. 이는 영화의 후반에 가게 되면, 꽤나 기계적으로 사용되는 것처럼도 보인다.

딸을 클로즈업하는 순간, 영화는 다시 컬러로 바뀐다.

스토커가 집으로 돌아온 뒤 절망하는 장면에서는, 다시 흑백으로 전환된다.

이 장면은 마치, 탄압을 당하는 선지자를 연상케 한다.

스토커의 노력, 다시 말해 구원으로 이끄려는 선지자의 노력은 이 시점에선 실패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쓰디쓴 행복이, 잿빛의 무딘 삶보다 낫죠."

"우리에게 불행이 없었어도 나을 것은 없었을 거에요, 더 나빴겠죠. 만약 그랬다면 행복하지 않았을 거에요. 희망조차도 없었을 테니까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헌신적인 사랑의 표식이다.

다시 딸을 비추는 컬러 장면. 영화는 마지막 이 장면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나도 세 병이 상징하는 것이 세 주인공이라 생각한다. 술병이 있는 것으로 봤을때, 꽤나 신빙성 있어 보인다. 사실 그거 아니면 다른 것을 생각하기 힘들다.)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가진 딸. 스토커가 진정 원했던 것이 구원이라면, 그의 소망이, 그의 믿음이 딸을 통해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들려오는 베토벤 교향곡 제 9번 합창. 미미파솔 솔파미레.

우리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가, 믿음을 품고 있는가.

여기서 이어지는 갈래

지도
「미카엘과 루시퍼」 지도›「영화가 영화에 답하다」 지도›
사람
이 감독을 더 보고 싶어6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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Анатолий Солоницын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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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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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나오는 영화가 좋았어20편›
종말 이후를 다룬 영화가 좋았어32편›
믿음을 다룬 영화가 궁금해32편›
종교를 다룬 영화가 궁금해4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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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 Эдуард Артемьев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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