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이라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채 시작하기도 전인 짧은 시간 동안 영화는 주인공 오카네의 비극적인 과거를 조밀하게 압축해 보여준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17세의 나이에 부잣집 노인에게 첩으로 팔려가 3년간 생활한 오카네는 노인의 죽음으로 거금을 받고 돌아온다. 아버지와 동생을 잃고,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폐쇄적이고 군국주의적인 마을이다.
마을의 희망이자 영웅으로 여겨지는 세이사쿠가 전역하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마을에서 가장 귀한 남자가, 마을에서 가장 천한 (취급을 받는) 여자와 결혼한다. 통속적인 구조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가 여전히 세련미를 발하는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공동체의 바깥에 있는 아웃사이더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세이사쿠는 더 이상 모두에게 지지받는 영웅이 아니며, 오카네는 시댁은 물론 마을 전체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둘의 관계는 주민들의 가십거리로 전락하고, 홀로 남은 오카네는 속물적인 마을 남자들의 위협에 노출된다.
이러한 배척은 단지 사적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영화는 군국주의의 광기를 통해 공동체 전체가 어떻게 상식을 잃어가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전역한 병사를 맞이하는데 마을 사람들이 모두 군복을 입고 욱일기를 든 채 행진한다. 부상을 입어 잠시 휴가를 얻은 세이사쿠에게, 전쟁에 가지도 않는 마을 남자들은 그의 가족이 듣고 있음에도 전사하지 않은 걸 두고 면박을 준다. "다음엔 꼭 죽으라"는 말이 칭찬처럼 오간다. 이번엔 세이사쿠가 꼭 전사하겠다고 다짐했다는 마을 여자들의 거짓된 감탄은 오카네를 향한 조롱이다.
그러한 압박 속에서 오카네는 점점 몰려간다. 결국 그는 자신의 손으로 세이사쿠를 장님으로 만든다. 미친 세상은 미친 선택을 낳는다. 그를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그와 떨어질 수 없기에 저지른 그녀의 행동은 결코 옹호될 수는 없지만, 극한의 외로움 속에 몰린 그녀의 처지엔 심정적으론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세이사쿠가 부상을 입은 뒤, 마을의 태도는 돌변한다. 그는 마을의 명예를 더럽힌 비겁한 존재로 낙인찍히고, 한때 위풍당당했던 그는 이제 아이들에게조차 돌을 맞는 존재가 된다.
마을에서조차 주목받지 못했던 타니무라의 아내는 전사한 자신의 남편과 세이사쿠를 비교하며 울분을 터뜨린다. 그렇게 마을은 자신들의 분노를 세이사쿠에게 투사하며 무너진 자존심을 복구하려 한다. 여순 함락 소식을 듣고 마을 전체가 연등회를 떠날 때, 그 자리에 없는 사람은 딱 두 가족뿐이다. 세이사쿠 가족과 타니무라 가족. 그들은 조용히 창가에 앉아 그 축제 행렬을 바라볼 뿐이다. 전쟁의 아이러니, 그리고 위선적인 군국주의.
영화는 전장의 모습을 한 차례도 직접 보여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비극성과 광기를 이토록 깊이 설득하는 작품이 또 있을까. 더불어, 본작은 미친 사랑 영화이자 기묘한 성장영화다. 장님이 되고, 비겁자가 되어, 혼자가 되고 나서야 세이사쿠는 비로소 오카네의 외로움과 절박함을 이해하게 된다. 오카네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바보 같은 모범청년"이었을 것이라 회한을 토로하는 세이사쿠의 그 말이 지독한 아이러니로 가슴을 울린다.
내러티브는 강력하다.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편집과 전개는 몰입도를 높이며, 선명한 캐릭터들은 불꽃처럼 강렬하게 다가온다. 점프컷은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연상케 하고, 지독할 정도로 중심에서 벗어난 숏들은 불균형한 감정을 시각화하며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세이사쿠의 아내>는 단순한 통속극의 껍데기를 쓰고 있지만, 그 안에는 너무나도 탁월한 반전과 비판, 애정과 광기가 뒤섞여 있다. 이것은 사랑의 이야기이자, 폭력적인 이념 아래 무너져 가는 인간의 이야기이며, 무엇보다도 한 여자가 견뎌낸 '지독한 외로움'의 기록이다.
+ 세이사쿠 역의 타무라 타카히로의 연기에 경의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