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쇼몽>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하는 <라스트 듀얼>은 주제적인 면에서도 <라쇼몽>을 이어받는다. 인간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하고 유한한 것인지.
리들리 스콧의 비주얼, 특히 사극에서의 그의 비주얼은 놀랍기만 하다. <킹덤 오브 헤븐>, <글래디에이터>, 개인적으론 좋아하지 않는 <로빈 후드>나 <엑소더스>에서도 그가 보여주는 웅장하고 날선 듯 정밀한 영상미는 오래 기억나는 요소다. 때문에 그의 다른 영화에서 비슷한 씬과 구도를 본 것 같은 느낌은 강하게 들지만, <라스트 듀얼>이 보여주는 겨울과 기사의 매력적인 이미지는 다시금 리들리 스콧에게 빠지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 같다.
발화자가 바뀌며 사건과 뉘앙스는 미묘하게 바뀐다. 1부에서 드러난 명예를 중시하는 카루소의 절개는, 2부인 자크의 시점에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사뭇 다르게 드러난다. 카루소의 용기는 자크의 시선에선 무모하게만 보여질 뿐이며, 카루소는 자신을 감싸준 자크에게 차갑게 등 돌리는 인물로 그려진다. 또한 자크의 시선에선 자크와 마그리트의 '미묘한 뉘앙스'가 보다 세밀하게 묘사된다.
3부에선 당대의 "고결한" 기사도의 이면에 있는 누추한 면모와 여성의 수난을 마그리트의 시선에서 설명한다. "성관계 중 남녀가 모두 절정을 느껴야 임신이 된다"는 당대의 이상한 과학을 풍자 어린 시선으로 드러내는 한편 법정 취조에서 희롱에 가까운 질문들을 던지는 판사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무엇보다 카루주의 어머니와 마그리트가 나눈 대화를 통해 여성이 감내해야 했을 시대의 암(暗)을 묘사한다.
앞선 1, 2장보다 한층 비참한 수난을 겪는 마그리트이지만 그럼에도 보다 주체적인 모습으로도 동시에 그려지는 그녀는 분명한 이 영화의 주인공이며 리들리 스콧은 관객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의 균형감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 놀랍도록 섬세한 작법으로 캐릭터를 완성한다.
기술적으론 3번째 에피소드에서 서사가 늘어지는 듯해 약간의 아쉬움은 남지만 영화 전반적으로 흡입력이 굉장해 단점으로 느껴질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리들리 스콧은 여전히 현역이고 여전히 젊고 강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