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부터 생각이 들었지만 타르코프스키(이하 탈콥)의 영화가 점점 개인적인 이야기를 투영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실제로 탈콥은 <잠입자>를 만든 이후 러시아에서 영화를 찍지 못하고, <노스탤지아>를 찍은 뒤 이탈리아로 망명했다고 한다.
영화의 주인공에게 서려 있는 고향에 대한 마음은 탈콥의 그것과 동일하게 보여진다. 특히나 망명 이후 탈콥이 갖고 있었을 정서를 짐작할 법 한데, 무의식 속 혹은 꿈 속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기억이지만 돌아갈 수도 없는 현실의 고통. 고향을 기억하게 하는 유제니아는 주인공의 고통을 증폭시킨다.
흑백 장면은 과거로 보인다. 과거의 고향으로 보인다.
하얀 깃털로 대변되는 순수함이 그곳 고향엔 있다.
연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있으며, 편안해 보인다.
꿈을 표현하는 듯한 연출은 놀랍기 그지없다.
탈콥은 빛과 어둠의 대비를 기가막히게 이용한다.
꿈은 기억의 산물이며 욕망 충족의 수단이다.
안드레이는 꿈에서도 고향을 그리워한다.
호텔엔 도메니코라는 남성이 살고 있다.
그는 다분히 종말론적인 사상과 행동을 겸비한 자로, 가족과 함께 7년 동안 세계의 종말을 기다렸다 한다.
"그는 미친게 아니야! 믿음을 가진 자야."
"아무도 그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 그들은 지독하게 고독할 수밖에 없어. 하지만 분명히 그들은 진실에 보다 가까이 있어. " 주인공은 그에게 마음이 간다. 그를 이해할 수 있겠다 말한다.
앞으로 가지 않는 자전거를 밟는 도메니코의 행동은 의미심장하다. 자전거는 나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자전거를 밟는다.
집 안에서 거울을 보는 장면, 프레임 아웃된 주인공이 다시 왼편에서 들어오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순간. 이것을 신의 선택을 받은 주인공을 나타내는 초현실적 모습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만약 도메니코를 광인으로 치부한다면 이 장면이 붕 뜬다고 생각한다. 도메니코가 옳았다면, 후에 나오는 안드레이의 행동은 그가 신의 사명을 감당하는 행동은 아니었을까.
가족은 주인공을 기다린다. 차례차례 나와 그를 기다린다.
왼편에서 프레임 아웃되었던 가족이 오른편에서 다시 나타나는 마법.
끝날 듯 끝나지 않고 굴레처럼 이어지는 기다림의 고난을 보여주는 것 같다.
도메니코는 로마로 간 뒤 기마상 위에 올라가 연설을 한다.
(여담으로 기마상의 인물은 오현제 중 한명인 아우렐리우스라고 한다. '이성'적이고 '과학 중심적'인 태도로 종교를 탄압했다고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세계가 진보하기를 원한다면 손에 손을 잡고 모두 함께 어울려야 해. 모든 정상인도 모든 병든 사람도! 정상인들이여! 너희가 말하는 정상이란 대체 뭐란 말인가! 인류는 지금 낭떠러지 앞에 있어,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앞에. 자유가 무슨 소용이 있어. 너희가 우리를 바로 보지 않은 채,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고 함께 잠자려는 마음도 없이, 모든 이른바 정상인들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바람에 세상이 이 지경의 파국에 이르른 거야!"
카메라는 군중들을 비춘다. 그에게 동조하는 인물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멀리 계단에 서 있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마네킹을 연상케 한다.
도메니코는 연설을 계속한다. 군중들은 돌처럼 굳어 있다. 도메니코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다. 군중들은 여전히 굳어 있다. 그를 저지하거나, 동조하거나, 연민을 보이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개만 주인에게 울부짖는다. 베토벤의 합창이 울려퍼지는 도중, 음악은 거칠게 끊기고 도메니코의 비명 소리만 남는다.
이어지는 안드레이의 촛불 롱테이크.
사실상 영화는 이 장면을 위해 달려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장면이 영화 한편의 무게와 맞먹는 경우가 있다면, 아마 이 장면을 예시로 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영화가 할 수 있는 가장 마법같은 순간일 것이고,
탈콥만이 할 수 있는 가장 기적적인 순간일 것이다.
1+1=1이라는 문구가 도메니코의 집에 걸려 있었다. 서로 다른 공간에서의 두 개의 촛불이 구원이라는 믿음 아래 하나가 되는 순간이다.
더욱 직관적이게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탈리아의 성당과 러시아의 고향이 하나가 되는 장면이다.
타향과 고향,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던 주인공을 위한 구원, 나아가 자신을 위한 안식을 영화 속에서 선물하는 모습이 처연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탈콥의 영화 중 음악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솔라리스>이고 영상미는 <잠입자>이며 완성도는 <거울>인데 탈콥의 영화 중 하나의 '장면'을 떠올린다면 단연 이 영화의 촛불 장면이다.
오랫동안 기억될, 탈콥의 위대한 또 한편의 영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