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죽음, 피해갈 수 없는 우연. 그들에 맞서는 이에게는 지옥을, 그들에 체념하는 이에게는 구질구질한 내일만을.
늙은 보안관 에드는 몇 년전 자신이 사형대로 인도한 악독한 한 살인마 청년을 소개하는 것으로 운을 뗀다. 그러고는 "요즘 범죄는 딱히 동기도 없다."며 작금의 세태를 탄식한다. 직업적 책임감과 오랜 경험으로 계속해서 사건 현장을 뒤쫓고 악을 추적하지만, 이 사태와 핵심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그저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의 찌꺼기만 주워먹는 도태된 늙은이로만 보인다.
여느 노인이 그렇듯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이들에게마다 그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가 풀어주는 '썰'의 요지는 매번 같다. 세상이 왜 이 모양인지 '모르겠어' 라는. 2002년에도 세상은 그렇다. 도대체 왜 일어나는지도 모르겠는 사건사고들이 넘친다. 그 모든 것들을 논리로 분석하려는 시도는 헛된 수고처럼도 보인다. 세상에 빚을 밝히려는 수많은 이들은 끊임없이 좌절한다.
이 영화의 문제의 존재 안톤 쉬거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행적을 선보이는 인물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들을 때까지 상대방을 옥죄고 지독할 정도로 자신만의 철학이 분명한 인물이다. 막무가내로 '내 앞을 막는 자'를 쏴 죽이는 혼돈의 존재가 아니며, 살인과 절도 등의 악행마저 자신에게 가장 효율을 가져다주는 방식으로 행한다. '동전 던지기'에 상대방의 생사를 결정하는 장면이나, 차근차근 계획을 거쳐 무혈로 약국을 터는 장면은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안톤 쉬거는 이 세상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우연'을 운명이라 믿고, 그 우연이 세상을 작동시키는 질서라 굳게 믿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 악마와 맞서는, 퇴역군인이자 전 용접공 르웰린 모스는 등장부터 범상치 않다. 황무지의 단서들을 통해 총격전이 있었던 문제의 장소를 찾아내고, 그들의 최후의 목적이었을 돈가방을 획득하기에 이른다. 자신을 쫓아오는 존재가 있음을 직감하고, 덫을 치고 복장을 갖추고 총으로 무장하는 등 철저하게 대비한다. 르웰린 모스는 거대한 악마에 홀로 대적하는 인간 같다. 그는 그 악마를 이겨낼 수 있을까.
하지만 불행히도 이것은 대적과 극복의 차원이 아니었다. 안톤 쉬거가 몰고 오는 것은 단지 안톤 쉬거의 몸만이 아니었다. 거스를 수 없는 '죽음'이란 운명과 이해할 수 없는 우연의 기운이 그와 함께 달려왔기 때문이다. 예상치 못한 순간 르웰린은 사망한다. 지금껏 그와 접접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이들에 의해 우연처럼, 또 운명처럼 스러졌다. 우연에 맞서는 세상의 수많은 인물 중 한명이었던 르웬린 모스는 끝내 그 우연을 피해가지 못했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거창한 음악이 흐르지 않고 솟의 기교도 코엔 형제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분명히 자제되어 있는, '텍사코' 사막의 황량한 모래알을 씹는 듯 건조한 영화다. 또한 돈가방을 놓고 쫓고 쫓는 추격과 폭력의 장을 벌이는 '네오 웨스턴'적 장르가 작동하는 영화다.
어쩌면 코엔의 영화 중 가장 장르적인 외피를 가진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거의 끝까지 장르적으로 굴러가며, 무엇보다 재미가 가득하다. 장중할 정도로 느리고 우아한 서스펜스는 독보적이며 연쇄되는 숏들의 화학 작용은 지금껏 코엔의 어떤 영화보다 강렬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주인공 세 배우는 각자의 경력에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코엔 형제가 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관철시켜온 주제의식이 가장 완성된 형태로 강력히 내재되어 있는 작품처럼 느껴진다. 코엔 형제가 앞으로 이 이상의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려울 것 같다. 허나 동시에 21세기에 앞으로 이 이상의 걸작이 등장할 수 있을지 확산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2022.8.29 2번째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