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서부에서Once Upon a Time in the West

1968 · 세르지오 레오네 · 이탈리아, 미국
옛날 옛적 서부에서 포스터
166분 · 드라마 · 서부 · 15세 이상 · 출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헨리 폰다, Jason Robards, 찰스 브론슨 · 음악 엔니오 모리꼬네 · 촬영 Tonino Delli Co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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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가 보낸 세명의 총잡이가 기차역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 드디어 그들이 기다리던 한 남자가 하모니카를 불며 기차역에 도착하고, 그들 세 총잡이는 모두 이름 없는 그 남자의 총에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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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를 만든 자는 서부에 살 수 없다

무법자들 같은 패거리 3인방이 역을 장악한다. 역장은 가두고 인디언 여성은 쫓아낸다. 그 셋은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역장과 인디언 여성은 그래도 말을 하지만 이들은 10분 넘게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씬의 중심은 명백히 이 셋이기에, 이 영화의 오프닝 10분은 사실상 무성영화라고 말해도 좋겠다. 2026년 작금의 시점에서 이러한 오프닝은 사고에 가깝다. 이야기의 어떤 전개도 없고, 인물들의 대사도 없다시피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과도 같았던 이 죽은 시간을 오프닝에 배치한 덕에, 그들이 기다렸던 존재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낼 때의 감흥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심심풀이로 한 명이 파리를 잡고 그것을 귀에 가까이 대 소리를 듣던 도중, 그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도무지 파리의 소리로는 느껴지지 않는 순간, 그 소리의 정체가 열차가 도착하는 소리임을 깨닫는다. 기다리던 열차가 도착하지만 짐만을 내리는 사람이 있을 뿐 아무도 그곳에 내리지 않는다. 긴장하던 셋이 긴장을 풀고 모여 떠나려 하던 순간, 지나가는 열차의 뒤로 그들이 진정 기다려 왔던 하모니카 맨이 등장한다. 자신이 타고 갈 말을 찾자 한 마리가 부족하다 응수하는 그들의 답변에, 두 마리가 남겠다고 또다시 응수하며 그들을 일거에 제거하는 하모니카 맨. 공간을 지루하지 않게 채우던 삐걱대는 소리의 주인공이었던 듯한 풍차가 한참 돌아가고, 한 발을 맞았던 하모니카 맨은 기절했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킨다.

영화가 시간을 보여주는 최고의 방식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숏의 연쇄를 통해 서사적인 정서를 만드는 데에 매우 뛰어난 역량을 가진 감독이다.

극의 후반 클라이맥스에도 감탄스런 장면이 등장한다. 최종장인 두 인물의 결투. 둘은 마주 보고 선다. 자신을 죽이려 왔다는 하모니카 맨의 의도를 여전히 프랭크는 당최 알아채지 못한다. 하모니카 맨의 눈으로 줌이 당겨지며, 흐릿하게 간헐적으로 등장했던 프랭크의 모습은 드디어 오래 전 그의 형을 목 매단 채 자신의 어깨에 걸치게 하고 조롱을 행했던 과거 프랭크의 시점으로 완전히 넘어간다. 하모니카 맨이 왜 이상한 멜로디의 음악만을 연주했는지, 왜 늘 하모니카를 들고 다녔던 것인지, 그리고 왜 프랭크에게 그토록 복수하려 했던 것인지 모든 비밀이 한 순간에 밝혀지는 순간이다. 장면 자체의 위태로운 정서와 감탄이 절로 나오는 유려한 편집, 그리고 일순간 결정되는 승패의 찰나까지.

그러나 이 장면에 깃든 흥미로운 지점을 짚지 않을 수 없다. 명백히 이 장면은 영화의 공식적인 하이라이트다. 그리고 이 만듦새 또한 상술했듯 엄청나다. 이 장면만으로 2시간 30분에 달했던 복수극의 정점을 찍을 정도의 만족감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장면이 어느 곳에서 벌어지는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복수극은 압도적인 양의 정서를 함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철도가 지어지는 공사현장의 한 '구석'에서 이뤄진다. 완벽한 복수에 어울리는 드라마틱한 공간에서가 아니라, 힘들게 땀 흘리고 있는 인부들이 즐비한 공사현장의 '한켠'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이 지점은 대단히 많은 것을 암시한다. 물론 공식적인 이 이야기는 복수극이며, 이 장면은 공식적인 하이라이트가 맞지만, 세르지오 레오네는 이 영화의 진짜 주안점을 인물이나 복수가 아니라 '변해가는 시대', '변해가는 공간'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총잡이들의 결투가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절이라면 이 장면은 정중앙에 놓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결투는 이제 막 세워지고 있는 새로운 세계의 변두리로, 구석으로 밀려나 있다. 카메라가 인물들을 비추는 동안에도 배경에서는 망치질과 톱질이 멈추지 않는다. 복수가 완결되는 그 순간에도 시대는 복수와 무관하게 자신의 속도로 전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복수극'이라는 형태 아래에서만 놓고 냉정히 판단하자면 다소간 아쉬울 수 있다. 러닝타임이 긴 까닭도 있었겠지만, 전반적으로 그 이야기가 팽팽하지 않고 여러 시점이 진행되기에 흥미가 다소 약해지고 밀도가 낮아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안점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파악한다면, 영화가 덜 짜릿할지라도 더 풍부하게 다가올 수 있다. 껍데기는 복수극이지만, 그보다 정서가 중요한 영화였음을.

이 영화에서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철로를 놓는다. 그들은 모튼이라는 철도 사업가 밑에서 일하고 있으니, 표면적으로는 그의 사업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모튼은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병든 몸으로 태평양을 보겠다는 집념을 불태우는 인물이고, 그 강박적인 개인적 욕망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를 이 철도 사업의 '주인'으로, 나아가 다가오는 새 시대의 얼굴로 착각하게 만든다. 총잡이들의 세계가 늘 그래왔듯, 관객은 이 새로운 힘에도 인격을 부여하고 싶어한다. 누군가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지시하고 소유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모튼이 죽는 순간 그 믿음은 깨진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레일을 깐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튼은 이 거대한 진행의 소유주가 아니라, 잠깐 그 자리를 차지했던 얼굴 마담에 불과했던 것이다. 철도는 그를 위해 놓이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가 그 흐름 위에 잠시 올라타 있었을 뿐이다.

여기서 이 영화가 근본적으로 묘사하기를 거부하는 것이 드러난다. 자본에는 주어가 없다는 사실이다. "누가 철도를 놓는가", "누구를 위해 놓는가"라는 질문에 영화는 끝까지 답을 주지 않는다. 총잡이들의 세계는 언제나 주어가 명확하다. 하모니카 맨이 프랭크를 죽인다, 샤이엔이 누군가를 쏜다. 전부 인격 대 인격으로 서술 가능한 능동태의 세계다. 반면 철도는 다르다. "철도가 놓인다"는 문장은 처음부터 수동태로만 존재하는 힘이다.

그러니 모튼은 서사적 미끼였던 셈이다. 관객이 그를 인격화해서, 그를 새 시대의 악당으로, 문명의 화신으로 이해하려는 순간, 영화는 그를 조용히 치워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철로를 계속 깐다. 낡은 질서는 죽음으로 완결되는 서사를 갖지만, 새 질서는 애초에 죽을 수 있는 주체 자체를 갖지 않기에 서사화되기를 거부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앞서 지적한 '구석의 결투'와 정확히 같은 통찰이다. 복수는 완결되지만 그 완결은 세계의 중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인격화 가능한 폭력의 종언과, 인격화 불가능한 자본의 무한 진행. 이 둘의 낙차가 이 영화의 진짜 형식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낡은 질서의 한 기능을 대표하다가, 새 질서 앞에서 차례로 폐기된다.

하모니카 맨은 이름도 서사도 없는, 순수한 복수의 화신이다. 그는 살아있는 인간이라기보다 과거의 빚을 청산하러 온 유령에 가깝다. 빚을 다 갚는 순간(프랭크를 죽이는 순간) 그는 이 세계에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져서 그냥 떠난다. 그는 미래에 편입되지 못하는 신화 그 자체다. 프랭크는 폭력에서 자본으로 전향하려다 실패하는 인물이다. 모튼 밑에서 사업가가 되고 싶어하지만 몸에 밴 총잡이 기질을 버리지 못한다. 문명으로 넘어가려는 폭력의 마지막 시도이자, 그 실패의 증거다.

모튼은 자본 그 자체다. 다리도 쓰지 못하는 병든 몸으로 태평양을 보겠다는 집념은, 폭력을 대체하는 새로운 폭력, 즉 자본의 얼굴이다. 그러나 앞서 보았듯 그는 얼굴일 뿐 주체는 아니다. 샤이엔은 구시대 무법자의 낭만적 잔재다. 새 세계를 만드는 것을 돕지만, 그 세계엔 자기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며 죽어간다. 그리고 질 맥베인. 유일하게 살아남고 번성하는 인물이다. 총도 쏘지 않고, 신화도 없고, 그저 생존과 적응의 화신이다. 남자들이 모두 죽고 그녀만이 새 도시의 여주인이 되는 결말 자체가 하나의 테제다. 미래는 영웅의 것이 아니라 실용주의자의 것이라는.

결국 이 영화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서부를 만든 자들은 서부에 살 수 없다. 총잡이도, 무법자도, 심지어 그들을 대체했다고 믿었던 자본의 얼굴마저도, 자신이 만든 세계 안에 자리를 갖지 못한다. 오직 그저 그 흐름에 몸을 맡겼던 자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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