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럿은 시대가 바뀌었으니 우리도 변해야 한다고 믿지만, 빌리는 바뀐 건 시대일 뿐 나는 변하지 않겠노라며 다짐한다. 개럿은 과거를 과거라고 생각하는 자이며, 빌리는 과거를 과거라 여기지 않는 자이다. 보안관이 된 개럿은 평판이 좋지 않고, 자유로운 무법자 빌리는 어딜 가나 환영받는다. 민심은 사뭇 빌리를 지지하는 것 같다. 물론 관객들 또한 마찬가지로 빌리를 지지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규칙보다 자유를 제공해 주는 자들을 좋아하니까. 더군다나 이 자유는 관객으로서는 책임 없는 자유이기에.
어떤 사람의 공식적인 직책은 그 사람의 선악을 담보하진 않는다. 개럿을 고용한 '치섬'. 정의를 자칭하는 그의 부하들은 무법자일 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 빌리를 공격한다. 빌리는 나쁜 짓을 일삼는 치섬의 부하들로부터 친구를 구한다. 반면 개럿은 유흥을 즐기고 과거에 비해 거만해지기까지 해 아내에게도 지지를 얻지 못하는 비호감의 보안관이다. 우리는 대체 누구를 지지해야 하는 것인가.
그래서 <관계의 종말>은 인물에게 애정을 보내는 영화가 아니다. <관계의 종말>은 과거, 지나간 것, 지나가고 있는 것들에게 애정을 보내는 영화다. <관계의 종말>은 사멸해가는 과거를 온몸으로 체감하는 자들의 씁쓸한 탄식이 배여 있는 영화다. 치명적인 총상을 당한 남편과 그를 본 아내의 눈물. 한 시대가 사라지는 것을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두는 직감하고 있다. 샘 페킨파는 추격전/액션이란 외피 안에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담아냈다.
세상에 백 퍼센트의 정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싱거우리만치 종국에 이르러 빌리의 가슴에 한 발의 총알을 발사한 개럿. 그러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본 개럿은 더없는 무서운 것을 본 것이라기도 한 듯 화들짝 놀란 채 한 발의 총알을 거울 속의 자신에게 더 발사한다. 겉으로는 "바뀐 시대에 맞게 우리도 바뀌어야 해"라고 말했던 개럿이지만 그 역시 속으로는 이전과 그대로였을까. 그러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외양은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자신도 낯설어 할 만큼 변해 있었다.
샘 페킨파의 다른 걸작들에 비해 액션의 강렬함이 다소 약하다는 인상은 있으나 한 영화의 함유된 액션이 그 단독적인 강렬함이 지나침으로 인해 영화의 전체와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만한 촌극은 없을 것이다. 이 영화로 어떤 정서를 말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하게 지켜낸 샘 페킨파의 뚝심에 점수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