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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남북전쟁이 한창인 때, 블론디는 멕시코인 총잡이 투코와 함께 동업 중이다. 블론디는 현상범 투코를 잡아 현상금을 받고, 투코가 교수형을 당하는 순간 구해주는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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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고의 웨스턴/스파게티 웨스턴/오락 영화
대사 없이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식. 인물들의 침묵과 대비되게 공간의 소리를 그래서 유독 의미심장하게 담는다. 거기에 교차편집은 여러 차례 반복되지만, 그럼에도 느리거나 질질 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본작은 강력한 세 주인공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인만큼 세 인물의 캐릭터가 매우 중요했을 텐테, 인물들을 각인시키는 면에서 세르지오 레오네는 완벽에 가까운 묘기를 부린다. 특히나 '못난 자' 투코와 '악한 자' 엔젤 아이즈를 소개하는 방식,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소개하는 타이밍이 그렇다. 세 인물 중 최초로 등장하는 인물이 투코인데 그의 첫 등장이자 이름이 소개되는 순간은 모두 기습에서 탈출하기 위해 창문을 깨고 나오는 순간이다. 과감함과 성향이 엿보이는 그 한 장면만으로도 투코라는 자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어서 엔젤 아이즈를 소개하는 방식은 완전히 정반대다. 조용하고 천천히 등장해, 사람을 죽일 것 같은 눈빛과 함께 침착한 심문으로 원하는 것을 가져간다. 양쪽에 돈을 받았으니 각자가 자신에게 맡긴 임무를 수행해야겠다며 양쪽을 모두 죽여버리는 그의 모습에선 차분하고도 확실한 처리를 하는 치밀함과 감정 따윈 배제한 듯한 잔인한 냉혹함을 읽을 수 있다. 그의 일련의 임무가 모두 끝난 후에야 그의 이름은 소개된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봐야 우리는 이 엔젤 아이즈라는 인물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인물이자 본작의 주인공처럼 보이는 '괜찮은 자' 블론디는 과묵하고도 확실한 실력으로 인해 셋 중 가장 강자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본작의 흥미로운 지점은 세 주인공 중 한 명도 '세계관 최강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는 대단한 무력을 지녔지만 북군과 남군의 전쟁 앞에선 그저 무력하게 쓸려가는 이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럴 듯한 계획을 세운 투코가 다른 인물에게서가 아닌 전쟁의 대포로 인해 어그러지는 것이 그렇고, 무시무시한 무력의 소유자인 투코와 블론디가 모양 빠질 만큼 북군의 포로가 되어 잡히는 것이 그렇다. 엔젤 아이즈는 간부로 북군에 소속되어 있지만, 바꾸어 말하자면 그 역시도 공권력의 영향을 무시한 채 무법천지로 세계를 거닐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들의 돈을 향한 여정 중에도 전쟁의 포탄이 쉴 새 없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 영화의 이야기는 '무법자들의 살벌한 결투'가 아니라 '남북전쟁 중 누군가들의 이야기'라고 정의하는 것이 적절해 보일 지경이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히어로처럼 소비되던 웨스턴 속 주인공들을 철저하게 발가벗긴다. 투코의 서사는 영웅 해체의 정점이다. 속물적인 면모만 가득한 것 같다가도 군데군데의 언변에서 유식함이 포착되는 그는 신부를 형으로 둔 사나이였다. 부모의 안부조차 몰랐던 투코는 신부인 형을 앞에 두고서 자신의 선택을 역설한다. 어떠한 거국적인 까닭이 아니라,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기에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도둑의 길로 들어선 것이라고. 세르지오 레오네는 자신의 등장인물에 세상을 구원하라며 임무를 맡기지 않는다. 오히려 세상을 살며 쌓이는 온갖 짐을 그에게 씌우며 사회와 역사를 비판한다.
점점 가까이 그들을 담는 카메라, 반복이지만 조금씩의 변주. 영화의 최후반부 세 결투가 너무나 유명하다. 하지만 그 장면이 우리의 기억에 남는 까닭은 3시간을 달려온 여정과 함께, 직전 장면인 공동묘지를 드디어 찾아 뛰어다니는 투코의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선 어떤 악이나 비열함의 정서도 사라진 채 순수하게 벅차오름의 감정만이 존재한다. 카메라마저도 숨이 차오를 듯 투코를 힘겹게 포착하고, 어쩌면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순수한 순간이었으리라. 그러한 무(無)의 장면이 직전에 배치되었기에 세 명의 결투에 우리는 감정적으로 더욱 몰입할 수 있지 않았을까.
60년 전 작품임에도 극장엔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있었다. 오히려 장년층보다 20대의 청년층들이 더 많이 모인 듯 했다. 그 모두가 이 영화의 코미디에 반응하고 웃음바다가 되는 것이 놀라웠다. 이 영화의 유머 감각이 시대를 타는 낡은 것들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5년도 더 전에 봤던 영화였지만 그 장면 장면들은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아시의 스크린으로 본작을 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근래 들어 서아시의 소중함을 더욱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예정된 베리만 기획전, 브레송 기획전 모두 소중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