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고메스 감독의 <그랜드 투어>는 한마디로 시차의 영화이자 충돌의 영화, 혹은 불협화음의 영화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어긋나는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때로는 충돌을, 때로는 새로운 해석이나 의미의 확장을 만들어낸다. 주인공 에드워드와 몰리는 비슷한 경로를 따라가지만 영화 속에서 결코 만나지 못하며, 배경은 분명 20세기 초반임에도 슬쩍 지나가는 스마트폰 같은 소품들은 시대의 불일치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요소들은 영화 전체에 독특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도대체 왜 몰리는 그토록 에드워드를 찾아 헤매면서도 끝내 만나지 못하는 것일까. 어쩌면 에드워드는 이미 기차 탈선 사고로 세상을 떠났는지도 모른다. 신문에서는 그저 ‘기차 사고’라고만 간략히 보도되었지만, 몰리는 그 가능성을 외면한 채, 혹은 믿고 싶지 않은 채 에드워드가 향했으리라 짐작되는 곳들을 하나하나 밟아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추측은 관객으로 하여금 두 인물의 관계와 영화의 숨겨진 이야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그랜드 투어>는 이처럼 맞지 않는 시점과 장면, 목소리와 이미지, 텍스트보다 늦게 도착하는 인물, 그리고 끝내 서로에게 닿지 못하는 인물들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기묘한 융합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에드워드와 몰리의 여정을 통해 식민 사회였던 ‘과거’를 들여다보는 동시에, 그 과거를 품고 변화한 ‘현재’의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특히 제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영국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감독은 마치 "너희가 지배했던 그 나라들이 지금, 21세기에는 이렇게 바뀌었다"라고 과거의 인물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영화의 전체적인 인상은 마치 거대한 물과 같이 유유히 '흐른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는 감독의 전작 <타부>에서도 감지되었던 특징이다. 흑백 화면 속에서도 유독 '백(白)'의 색감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듯한 영상미는 이런 흐름을 더욱 인상적으로 만들었고, 그렇기에 이 영화는 반드시 완전한 암전이 보장된 극장에서 관람할 것을 추천한다. 과거의 인물인 몰리가 현재의 촬영 스태프들에 의해 영화 속 현실로 구조되는 듯한 엔딩, 그리고 윤회하듯 원을 그리며 도는 관람차의 이미지는 앞서 말한 과거와 현재의 융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종합 예술로서 영화가 공감각적 요소들을 아름답게 조응시키는 데 반해, <그랜드 투어>는 오히려 이 요소들을 충돌시킴으로써 '융합'이라는 독특한 지점을 구현해냈다.
(다만, 그 화법이 상당히 불친절하고 복잡하기에, 관객 스스로 영화를 '해체'하며 보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그런 방식으로 곱씹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