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레슬매니아 40의 링 위에서 더 락은 더 이상 젊지 않았다. 언뜻 외형은 여전해 보였으나 얼굴에는 나이가 역력했고, 환갑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체감되었다. 그리고 그 몸이 이번에는 마우이를 연기한다. 늙지 않는 반신, '불로'하는 존재를 말이다. 이 영화가 떠안은 문제의 거의 전부가, 이 영화의 마우이 위에 그대로 얹혀 있는 셈이다.
본작으로 이 시리즈를 처음 접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인즉슨 대부분의 관객은 본작이 이전작의 이야기를 그대로 가져온 것임을 이미 알고 있고, 그러니 이야기 자체에 대한 평가를 여기서 다시 하는 일은 공연한 동어반복이 되기 십상이다. 굳이 지면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이 글은 필연적으로 이전작과 '다른' 부분을 짚고, 그것을 이전작과 견주어 우열을 따지는 데로 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다름의 요지는 결국 실사화다. 실사화는 이 영화를 살리는 손이자 동시에 죽이는 손이다. 같은 변환이 어떤 장면은 들어 올리고, 어떤 장면은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먼저 들어 올리는 쪽. 일명 '동굴 씬'은 애니메이션의 장면이 사실상 그대로 반복되지만, 실사영화가 제시하는 보다 입체적이고 보다 설득력 있는 스케일이 인상적이다. 같은 그림인데도 더 설레고, 더 기대가 된다. 항해를 시작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사라는 컨셉은 바다의 질감을 훨씬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라이프 오브 파이>나 <아바타>를 떠올리게 하는, 야광색으로 빛나는 바다는 그 색감만으로도 아름답거니와 화면 안에서 훨씬 입체적으로 출렁인다. 여기서 실사화는 제 몫을 한다. 그림이 감당하지 못하던 무게와 질감을, 실물의 카메라가 채워 넣는다.
그러나 바로 그 실사화가 타마토아의 시퀀스를 통째로 지루하게 만든다. 수백 번 본 듯한 억지스러운 유쾌함, 최고로 화려하지만 되려 지리하기만 한 장면들. 애니메이션의 자장 안에 있을 때는 용인되던 과장이, 그 자장 밖으로 끌려 나오는 순간 통째로 유치해진다. 만화였기에 사랑스럽던 것이 실물이 되자 민망해지는 것이다. 실패에 가까운 시퀀스다. 앞의 바다를 빛나게 한 힘과 이 시퀀스를 침몰시킨 힘이 정확히 같기에, 이 지점은 이 영화가 빠진 곤경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곤경이 가장 깊은 자리에서 드러나는 것이 다시 드웨인 존슨의 몸이다. 애니메이션의 마우이와 견주면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다소 많고, 그 탓에 '불로'라는 인물의 설정과 어딘가 어긋난 모양새가 된다. 실사화의 사실성은 정직해서, 늙지 않아야 할 존재마저 늙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이 늙은 마우이에게 반말을 건네는 모아나의 모습마저 다소 생경하게 다가온다. 사실성이 판타지의 논리와 부딪히는 지점을, 관객은 사소한 위화감의 형태로 먼저 감지한다.
정색하고 본다면, 나는 이 영화가 이전작 <모아나>보다 완성도에서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사부터 연출까지 모든 것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이유로 누군가 이 영화를 이전작보다 낮게 평가한다면, 그 말에 대해 나는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할 것 같다. 더 잘 만들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만들 이유가 있었는가는 다른 물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