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풀 악셀을 밟는 오프닝의 템포가 영화 내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다. 영화를 5분만 봐도 알 수 있음이, 이 영화는 바쁘다. 그리고 급하다. 시간은 유한한데 할 일은 많다.
제법 "합리적인" 방법을 찾은 듯 하다. <닥터 스트레인지 2>는 서사를 선보이는 시퀀스와 액션을 선보이는 시퀀스가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있다. 전자를 위한 시퀀스에선 인물들의 입을 빌려 충실히 염불을 읊고 후자를 위한 시퀀스에선 그린 스크린 위의 색칠놀이가 하릴없이 지속된다. 서릿한 공산품의 향기만 남아 있다. 영화는 지루할 틈이 없지만, 이는 그저 산만하기 때문이다.
도구적인 시퀀스가 많은 건 이래저래 필연적이었다. 해야만 하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전후를 뒤집자면 서사를 굴리기 좋은 새로운 개념, 이를테면 '드림워킹'이나 '비산티의 책' 등을 수없이 등장시켜 영화는 "대의를 위해" 이들을 설명하고 납득시키고 선보이면 러닝타임은 어느새 채워진다.
비즈니스적인 "업무"들만이 가득하니 관객에게 꽂혀야 할 장면들의 정서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닥터 스트레인지와 모르도의 맨몸 격투 장면은 서커스처럼만 남는다. <시빌 워>의 1 VS 2 격투 씬이 관객의 마음을 가져간 이유는 세 인물이 얽힌 길고도 슬픈 비극 때문이었고, <엔드 게임>의 캡틴 아메리카 VS 캡틴 아메리카가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던 이유는 캐릭터 스스로의 변치 않는 정신의 위엄과 흐른 시간만큼의 미묘한 성장 등이 그 순간을 통해 관객들에게 납득되었기 때문이었다.
지구 최고의 지성 집단이라는 일루미나티는 뜬금없는 등장으로 관객을 납득시키지 못하는데 더욱이 이들의 죽음에선 어떤 감정적인 요동을 전달받지 못했다. 일루미나티는 완다의 능력을 부각시키고자 한껏 비대하게 만들어진 뒤 도구적으로 휘발된 집단이다.
군데군데 이 영화가 누구의 손을 거쳤는지 상기시켜주는 샘 레이미 식의 연출은 반가웠다. 괴물의 눈알이 시신경과 함께 뽑힐때나, 사실상 좀비와도 같게 묘사된 완다의 이미지, 또한 자신의 전작들에 대한 오마주 등 마블에서 본 적 없었던 '호러'에 기반을 둔 이미지들은 신선했다.
한 영화는 그 영화 자체로만 놓고 평가하자는 게 내 나름의 주관이었지만 이 영화를 바라볼 땐 마블이라는 거대한 집단의 방향성에 대해 바라보는 의견을 평가에 덛붙여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본격적인 멀티버스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이기에 스스로도 기대해 마지않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세계와 세계가 만나며 생기는 'depth'보다는 'wide'의 방향만으로 이어졌다. 그저 새로운 개념과 인물만을 MCU에 소개하는 방향성인 듯하다. 그저 새로운 굿즈를 팔아먹고자 하는 의도로 보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인 것일까. 새로운 디자인의 닥터 스트레인지들과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이 영화에 얼굴을 비추게 한 진짜 목적이 무엇일까. MCU는 2차 시장을 위한 하나의 런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