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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넨버그의 크리처 디자인은 항상 기발하다. 이번에도 그렇다. 수십 개의 귀가 달린 '인간'의 비주얼은 그야말로 쇼크다. 어떨 때는 크로넨버그는 크리처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지퍼 러브신'은 <경계선> 이후 가장 쇼킹한 러브신이었다.
지구의 모든 인류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떤 사회가 만들어질까. 상상을 할 뿐인 미래이지만 아마도 상대방의 (정신적) 고통마저 공감하지 못하는 냉랭한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날 때부터 고통이라는 것을 모른 채 태어나게 된 미래의 아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한 진화로 인해 신인류가 태어난다면, 그러한 신인류는 사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겠는가?
고통을 느끼지 못하도록 인류가 진화된 사회에서 신체 훼손은 예술의 한 장르로 대우받는다. 가속진화증후군으로 인해 지속적으로 장기를 떼어내야 하는 사울은 예술가로 대접받는다. 관객들은 그의 무대 뒤에서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선 공감하지 못한다. 더이상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된 사울이 플라스틱 성분의 바를 먹으니 기력을 되찾았다. 어머니에 의해 죽었고, 사회에 의해 한 번 더 죽었던 아이 브레켄은 가속된 진화로 인한 필연적인 인류의 진화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크로넨버그의 많은 영화들은 흥미진진하지는 못했다. 소재만큼 이야기가 흥미롭진 못했다. 정색하고 보자면 상당히 낯설고 흥미로울 수 있는 소재다. 소재와 그로 인한 세계관만 해도 여러 방면으로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데, 본작이 펼치는 상당히 좁은 이야기에 비해 영화의 설정이 존재감이 너무 커 어울리지 않는다. 감독판이 있었을까. 있다면 보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