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오후Afternoons of Solitude

2024 · 알베르 세라 · 스페인, 포르투갈
고독의 오후 포스터
126분 · 다큐멘터리 · 15세 이상 · 출연 Andrés Roca Rey, Roberto Domínguez, Francisco Manuel "Viruta" Durán, Antonio Chacón · 음악 Marc Verdaguer · 촬영 Artur T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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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스타 투우사 안드레스 로카 레이의 초상으로, 전통에 대한 존중과 미학적인 도전으로서 위험을 무릅쓰고 황소를 맞서는 투우사의 내밀한 경험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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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순수하고 평등한 형태로 광기를 응시한 기록의 시네마

어둡고도 답답한 공간에서 검은 소가 숨을 몰아쉰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혹은 무언가가 충족되지 못한 듯 불안한 모습으로. 이어 화려한 복장을 한 어느 남성이 어딘가로 이동한다. 밝은 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파악되는 그의 상태. 피투성이가 된 모습. 피 묻고 답답한 옷을 벗어던지나 했더니 이내 다시 새 복장을 갖춰 입고 또 다른 공간으로 향한다. <고독의 오후>는 스타 투우사 안드레스 로카 레이의 일정한 나날들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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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플롯과 카메라라는 것을 가지고 맥락이 깃든 서술을 덧입는다. 이와 비슷하게, 스포츠는 관중의 존재를 통해 비로소 비생산적인 행위에서 예술의 경지를 획득한다. <고독의 오후>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지만, 흥미롭게도 그 두 분야를 빛나게 해주는 요소들이 최소화되어 있다. <고독의 오후>는 플롯과 스토리, 카메라가 사라진 영화이자, 관중이 사라진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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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작의 중심에는 단연 투우 장면이 있다. 그러나 카메라는 그것을 극적인 방식으로 포획하지 않는다. 오히려 투박하다고 말하고 싶을 만큼 의도적인 퇴행을 택한다. 할리우드가 (<벤허>, <글래디에이터> 같은 영화들이 그러했듯) 경기장을 통해 장엄함과 숭고를 구축해 왔다면 알베르 세라는 그 모든 가능성을 반 할리우드적으로 소거한다. 경기장에 비해 카메라는 지나치게 가깝고, 프레임은 인물과 짐승을 포위하듯 짓누른다. 말도 안 되게 작은 옥타곤에서 두 존재가 그저 ‘뒹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거리감 속에서 투우는 잔인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알베르 세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 투우라는 문화의 존폐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아니다. 그는 어느 한 편에 서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 동물을 위한다 말하면서도 현장에서는 소를 향해 모욕과 저주를 퍼붓는 인간들이 있고, 동시에 자신의 직업적 퍼포먼스를 위해 목숨을 걸고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프로페셔널함을 가진 인간들도 있다. 더 나아가, 한 인물이 그 모든 얼굴을 동시에 지닐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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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가 된 채 숨을 헐떡이는 소의 모습은 더 이상 짐승이라기보다 인간을 연상시킨다. 소의 숨통을 끊는 순간은 마치 인간을 죽이는 장면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소와 인간(안드레스)의 구도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다. 매우 위험한 장면이 그에게 닥치기도 한다. 관련자들이 일순간에 다가와 소를 그에게서 떼어놓아야 하는, 매우 가까이에서 소에 받혀 버리는 리얼한 실제 사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존재하지 않는 (=카메라에 보이지도 않는) 익명의 관중들은 되려 그 순간을 보며 더욱 흥분하고 환호하며, 그 광기는 가벼워 보이지 않은 투우사의 부상 따위를 묵살하며 경기를 지속시키라는 고압적인 무언가의 에너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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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다. 두 생명체는 모두 악에 받히고, 패배한 존재는 말들에 끌려 흙바닥을 질질 끌려 나간다. 승리한 존재만이 환호를 누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온 팬으로부터 ‘신의 이름을 빌린 축복’을 얻는다. 경기가 반복될수록 각 소들의 생사 여부는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처리된다. 쓰레기를 처리하듯, 일상적이고 기계적인 손놀림이 이어질 뿐이다. 관객의 감정 역시 흔들린다. 소의 고통을 보며 안타까워하다가, 이내 투우사가 다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해진다. 그리곤 어느 순간 (공감의 형태가 사라진 채) 둘을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동물 윤리에 대한 판단에서도 슬쩍 멀어진다. 이 싸움은 인간 대 동물이 아니라, 같은 생명체끼리의 대결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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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특정한 감정을 관객에게 주입하려는 의도를 끝내 거부한다. 선역과 악역의 구분은 무너지고, 모든 맥락은 뒤엉킨다. 이 장면을 통해 관객에게 특정한 무언가를 주고 싶다는 의도가 사라진, 그러면서도 선역과 악역의 맥락이 사라져 뒤엉키는 순수한 광기의 현장에서 당신은 무엇을 느끼고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알베르 세라의 필름메이킹은 무감정한 카메라를 끝까지 필사적으로 들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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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에서 처음으로 관객의 시점 숏이 등장한다. 그것은 마치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한 어느 직장인의 인사처럼 느껴진다. 정서와 윤리를 철저히 발라낸 ‘비즈니스’를 목도하는 순간이다. 다만 흥미로운 지점은, 만약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존재가 안드레스가 아니라 ‘소’였더라도 관객의 반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저 간악무도한 짐승을 이긴 인간에게 보내는 박수가 아니라, 나에게 광기와 도파민을 선사한 생명체에게 보내는 박수. <고독의 오후>는 끝내 누구의 편도 들지 않은 채 다만 우리가 무엇에 열광하고 있는지를 끝까지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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