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le
1. 명사: 원형
2. 명사: 동그라미, 원
3. 동사: (특히 공중에서) 빙빙 돌다
4. 동사: (무엇의 주위에) 동그라미를 그리다
자파르 파나히의 작품은 드라마스럽지 않다. (물론 당연히 치밀한 각본이 존재했겠지만) 자파르 파나히의 작품들은 정말로 그 순간 그 공간에서 실제로 일어난 현실처럼 느껴진다. 자파르 파나히의 영화가 '현실성'에 있어서 그러한 진정성을 보이는 까닭 중 한 가지, 자파르 파나히는 한 인물에게 수많은 조건을 부여하는 등의 '설정'을 통해 그에게 영화 전체를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막중한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보고 싶다. 그리고 <써클>은 그러한 자파르 파나히의 필름메이킹을 상징하는 작품과도 같다.
<써클>은 이란의 여성들의 행적을 옴니버스 식으로 흘려보내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본작에는 공식적으로 6명의 시점이 등장하는데, 어떤 여성이건 간에 이란의 여성들은 모두 고통받는다. 제일 먼저 포커스를 받는 여성 솔머즈 골라미는 탄생한 아이를 마주함에도 이 땅에서 살아갈 여자 아이이기에 반기지 않는다. 그러더니 공중전화 부스 주위에 있는 여성들에게로 슬며시 포커스를 이동하는 카메라. 그 중에서도 '나르게스'에게 카메라는 집중한다. 히잡을 뒤집어 쓴 채 감옥에서 탈출한 나르게스는 남자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이란의 차별적인 고정관념에 고통받는다. 혼자선 여행을 갈 수도 없고, '대개의 여성처럼 기억력이 짧은 한 명'으로 취급당한다.
감옥을 빠져나온 셋 중 한 명이었던 '파리'는 집에 돌아갔지만 환영받지 못한 채 사실상 쫓겨난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임신한 상태였던 파리는 낙태할 방법을 찾는다. 공식적으로 여성의 낙태는 남편의 동의나 신분증 없이는, 혹은 아버지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차도르를 입지 않으면 응급실에 갈 수조차 없는 상황에 어찌어찌 찾아간 그곳 병원에서 일하는 친구 엘함은 자신의 과거가 지금의 남편에게 들킬까 두려워 파리를 계속해서 밀어낸다.
거리에선 도저히 형편이 되지 못해 딸을 버린 어떤 어머니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자신이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는 신만이 아실 것이라고. 만신창이가 된 그녀 나예르에게도 어떤 남자는 추파를 던진다. 그녀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여성은 감옥에 잡혀가고, 그녀가 투옥된 공간은 또 그녀와 아마도 비슷한 처지였을 수많은 여성들이 먼저 갇혀 있다. 오프닝과 수미상관적인 구도가 생기지만, 말하자면 생(生)의 입구였던 산부인과에서 사(死)의 입구인 감옥으로의 변화. 순환이지만, 한 바퀴 지날수록 구렁텅이에 빠진다.
인공적인 연출을 자제한 다큐멘터리적 접근에, 릴레이 식으로 이어지는 로드무비 형식을 가져온 <써클>은 독보적인 주인공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러닝타임 내내 산재해 있는 (여성들의) 절망, 이란이라는 나라에 새겨진 뿌리 깊은 인습들이 느껴질 뿐이다. <써클>은 moment가 아니라 stream을 말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