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텔로니는 '빈둥대기나 하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청년들'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본작의 이들이 모두 무위도식하는 자들은 아니다. 레오폴드는 말하자면 적극적인 '예술가 지망생'이며, 파우스토는 공방에 취직해 있는 직장인이다. 그렇지만 영화를 작동시키는 정서는 그들의 '일'하는 순간이 아니라, 카페의 의자에 모여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팔자 좋게 늘어져 있는 '데드타임'의 순간들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본작은 태생적으로 '사회 바깥'의 영화이자, '철 들지 않음'을 주제로 삼고 있는 영화다.
우정으로 묶인 청춘들의 전기 이야기로 다소 평범하게 흘러가는 듯했던 영화는, 파우스토의 바람기가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흥미로워진다. 아내와 함께 있는 극장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유부녀에게 반해 (물론 유부녀라는 것은 추후 알게 되었지만) 그녀의 집 안까지 따라가 강제로 키스하기에 이른다. 자신이 직원으로 있는 직장 사장의 아내를 탐하려고 하다 해고되기까지 하며, 가족을 부양할 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직장 창고의 천사상을 훔치기까지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내 산드로는 자식과 함께 집을 도망쳐 사라져 버린다.
정색하고 본다면 대단히 심각한 범죄이자 사태지만, 영화는 이 이야기를 그렇게까지 삭막하거나 비극적으로 담아내지 않는다. 영화를 작동시키는 정서는 '철 없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소동이 해소되는 과정조차 짐짓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방식으로 펼쳐진다. 사라진 산드로를 파우스토와 함께 찾으러 떠나는 친구들은 도중 '베이컨 넣은 오믈렛'에 솔깃해 옆길로 새기도 하며, 차로 지나가며 노동자들을 조롱하다 도중 차가 멈춰 그들에게 붙잡히는 촌극을 만들기도 한다. 자신의 아버지 집에 있는 산드로를 발견한 파우스토는, 마치 아이가 부모에게 훈육 받듯 아버지의 허리띠로 매를 맞으며 그제서야 사죄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내용물이 아니라 포장지의 예술일 것이다. 속된 이야기이자 흔해빠진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예술이 되기도 한다. 흥미롭지만 가벼운 이야기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우아한 속력의 리듬을 지니고 있으며, 그로 인해 신비할 정도의 격조가 영화 전체에 임재한다. 고전은 달리 고전이 아니다. 시간을 이겨낸 작품들이 고전의 대우를 받는 것이지, 고전의 조건에 '진지하고 심각한 이야기'가 포함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책에 기록된 거장들의 필모그래피가 모두 엄숙하고 비장한 이야기로만 꾸며져 있는 것은 아니다.
남자는 영원히 애다. 이 한 문장은 어쩌면 <비텔로니> 전체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말일지 모른다. 사회 바깥에서 철들지 못한 채 어른 흉내만 내는 이들의 유예된 청춘은, 실패도 상처도 모두 하나의 소동처럼 지나간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어른이 되지 못한 자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자, 그들이 누리는 철없음의 아름다움에 대한 마지막 찬가에 가깝다. 마지막 찬가, 바로 그렇다. 그래서 엔딩에 이르러서야, 그들 중 하나였던 모랄도가 고향을 비로소 떠나게 되는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