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요하다시피 할 정도로 영화는 저택의 주방을 비춘다. 철저한 보안과 함께 반입되는 최고급 식재료들, 엄격하게 '스케쥴된' 식사들, 더 엄격하고 긴장감 넘치는 그곳의 위계. 이 저택의 주방은 이 왕실의 축소판 같다. 다이애나 스펜서가 견디지 못하는 그런 것들. 스펜서가 처음 만난 이 저택의 인물이 대런 셰프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카메라워크, 미술, 대사. 모든 연출은 다이애나의 뇌 속을 헤엄치고 있다. 영화 스스로는 내색하고 있지 않지만 장르 영화에 견줄 정도로 내내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외피적으로, 외적인 촬영이나 음악의 사용에서 <배리 린든>을 떠올리기도 한다.
공간적으론 <레베카>나 <샤이닝>이 만들어 온 그 폐쇄의 역사를 <스펜서>는 그대로 이어받은 듯 보인다. 마치 저택의 공간 자체가 다이애나 스펜서를 억누르고 옥죄이는 듯한, 절멸에 가까운 고립감을 관객이 오롯이 체험할 수 있다. <스펜서>는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영화다.
한편으론 그래서 영화가 지나치게 '치밀하고' 계획적인, 작위적인 것 아닌가 싶은 인상을 받을 때가 있었다. 다른 영화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영화를 개인기로 만든 것 같다는 느낌은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스펜서 그녀를 향한 온정과 구원의 시선을 고수하는 것을 보면서, 그 관철하려는 신념을 인정하게 된다. 영화는 이미 기록된 과거를 바꿀 순 없지만, 우리에게 찾아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바꿀 순 있다 믿는 듯, 매기와의 재회부터 왕국을 탈출하는 일련의 마법처럼 순수한 순간들이 벅차다. 여전히 훌륭한 영화가 탄생하고 있음이 행복하다.
<스펜서>는 크리스틴 스튜어트라는 존재가 없었더라면 탄생하지도 못했을 영화라고까지 표현하고 싶다. 순간 폭발하는 연기가 아닌, 내내 시름시름 떨리는 연기를 몸과 눈빛으로 보여준다. 그녀의 경력 최고점에 위치한 연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시끄러운 개인사 등의 이유로 그녀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옛날보다 적었던 최근의 나로서도, 나는 다시 한번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좋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