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미래, 어둠 속에 수많은 붉은 빛들이 떠 있다. 마치 우주의 별들처럼 도시를 내려다보는 그 빛들은 세상을 감시하는 듯한 인상을 주며, 사뭇 괴기스러우면서도 독특한 질감을 자아냈다. 일렉트로닉 음악의 강렬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 마주했을 때 <아사코>를 처음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의 장르는 한두 가지로 규정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성장 드라마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지진이라는 재난이 이야기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한다. 또한 AI로 인한 SF적 요소는 영화에 분명한 '킥'을 선사하며, 배경에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블랙 코미디적 요소가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본작의 훌륭한 점은 이처럼 다양한 장르가 각자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도 산만하지 않고, 고유하면서도 일관된 형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해피엔드>의 이야기는 마치 대지진이 닥치기 전의 '지진 전조현상'을 보는 듯했다. 실제로 이야기 속에 지진이라는 소재가 등장하기도 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학생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에너지를 분출하고, 그 분출은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소동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사회의 통제 앞에서 학생들의 '일탈'은 미미해 보인다. 사회의 통제 아래 놓인 대부분의 청춘들은 현실에 순응하며, 등장인물의 말을 빌리자면 "포기한 세대"의 패배주의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정부는 국민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내진설계"를 추진하고, 사회의 청춘들과 새로운 세대들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들의 '일탈' 공간이자 '아지트'인 클럽 앞까지 음악 장비를 옮겨왔지만, 그곳은 '초내진설계'라는 플래카드와 함께 이미 공사 현장으로 변해 있었고, 유타를 맞이한 것은 밖으로 내버려진 클럽 안의 장비들이었다. <해피엔드>는 이처럼 회색빛 좌절감과 틴에이저의 날것 그대로의 푸른 감성이 공존하는 참으로 기묘한 영화다.
더욱이 '차별'은 본작에서 중요한 키워드로 작용한다. 말썽꾸러기 5인조는 어떤 편견 없이 대만 여성, 미국 혼혈 남성, 한국인 혼혈 남성이 함께 어울리는 무리지만, 총리는 이민자를 혐오하고 주인공 코우 어머니의 일터는 '비국민'이라는 낙서 테러를 당한다. 특별 영주 증명서를 소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코우는 거리를 편히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교실에 자위대가 들어오고, 선생님은 귀화하지 않은 학생은 들을 필요 없으니 나가서 자습하라고 말한다. 이에 반발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어 교실을 나간 학생들은 AI에게 '무단 이탈'로 인식되어 단체로 벌점 3점을 받는다. 이 부분은 특별히 상당히 공격적으로 느껴지며, 무섭기까지 하다. 마치 조용하고 차분하던 모범생이 자신의 분노를 폭발하는 순간을 목격했을 때의 낯섦과 같았다. 네오 소라의 내면에는 어떤 분노가 담겨 있는 것일까.
다만, 본작이 모든 소재를 그저 건드리고 겉핥기식으로만 다룬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때문에 영화가 다소 얕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예를 들어, 교장이 초밥 세트를 학생들에게 건네는 장면에서, 배고픔에 갈등하다 결국 참지 못한 학생 한 명이 초밥을 받으려 하자 후미가 그것을 엎어버리고, 그 순간 코우가 밥을 들고 도착하는 장면은 다소 인공적이고 진부한 법칙으로만 구성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슬아슬한 빙판 위를 걷는 듯한 이 영화의 미묘한 정서는 대단히 매력적이다. 농성을 통해 원하던 바를 얻어내 기뻐하던 학생들. 그러나 교장이 약속에 없던 조건을 내걸면서 학생들은 다시금 혼란에 빠진다. 어쩌면 가장 미래가 불확실했던 인물인 유타가 홀로 십자가를 지고, 대학 장학금을 눈앞에 둔 코우는 그 때문인지 내내 행동주의자적인 면모와는 어울리지 않게 침묵을 지켰다. 세상은 이미 끝났고 포기하면 편하다고 말하고 다니던 유타는 자신들의 세상을 바꾸었고, 계획이 있으며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하던 코우는 정작 행동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이 영화를 거시적으로 보나 미시적으로 보나 도저히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설명할 자신이 없다. 그럼에도 엔딩은 한 줄기 빛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빛이 상황을 뒤엎을 만한 거대한 화염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점점 속박되고 각박해지는 세상 속에서, 그러한 '접촉'이 삶 속에서 일어났을 때 세상은 하루라도 더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닐까 하고 말하는 듯하다. <해피엔드>는 희망찬 미래를 제시하지 않지만, 희망찬 미래를 (관객과 함께)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