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 초반부 살인 장면에서, 분명 이 영화는 '장르'가 아니지만 너무나도 건조하고 현실적인 연출과 편집으로 인해 그 몰입감과 공포감은 수많은 장르 영화의 그것을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일상을 깨는 순간, 버스에서 발생하는 살인사건을 너무나도 건조하고 현실적인 연출과 편집으로 담담하게 드러내는 아요야마 신지의 연출은 그곳의 현장감을 영원히 박제하는 것만 같다.
<드라이브 마이 카>보다 눈에 보이는 기교는 적지만 감독의 빽빽한 공력이 느껴진다. 물론, 아요야마 신지의 테크닉 역시 절륜한 수준이다. 이 영적인 카메라워크와 롱 쇼트에는 아득함과 서늘함이 깊게 서려 있으며, 21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에도 영화는 늘어지거나 주의를 빼앗기지 않는다. 매 숏 매 씬의 연출마다 과한 지점은 존재하지 않고 안일한 맺음 역시 한 순간도 없었다.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진 이들을 비춘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남겨진 이들의 고통을 어찌 창작하고 재현할 수 있으랴. <유레카>는 한 사람의 인생을 감히 2~3시간의 러닝타임으로 모두 보여줄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에서 출발한 영화다. 그래서 <유레카>는 입바른 희망을 건네지 않는다. 말하건대 이 영화는 세상을 두 발로 걷는 영화가 아니라 네 발로 기는 영화이며, 꿋꿋하게 사는 영화가 아니라 연명하는 영화일 것이다.
영원히 잊을 수 없을 사건을 목격한 트라우마, 거기에 스스로가 살아남은 것이 민폐인 것은 아닐까라는 혼란. 비극보다 더 큰 비극은 남겨진 이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다. 그래서 그들은 무작정 차를 몰고 달리기 시작한다. 이것은 하나의 서부극에 가깝다. 트라우마의 극복이 될지 데자뷰가 될지. 그리고 그들은 진실을 목격하고, 결국 세상의 끝에 도달한다. 돌아갈 곳이 없던 그들이었지만 더이상 갈 곳도 없게 되었다. 무언가 명백한 정답이나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래서 명확하게 집에 갈 수 있게 된 것 같다.
<유레카>의 엔딩은 명백히 <수색자>의 그것을 오마주한 형상이다. "집에 가자.". 이 한 마디를 위해 영화가 달려온 듯, 3시간 30분 동안 절망적인 세피아 톤으로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았던 영화는 컬러로 전환되며 카메라는 무한히 세상으로 뻗어나간다. 이런 위로는 영화만이 건넬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세상은 영화가 끝난 후로도 비극이고 슬픔일 수도 있겠지만, 끝내 피를 토하는 사와이 마코토의 미래는 밝은 빛이기 어렵겠지만, "그럼에도."